사회
외제차 3대 계약했지만…차 구경도 못 한 직장인 사연은?
입력 2021-03-15 11:55  | 수정 2021-03-22 12:05

"차만 찾게 해주세요"

지난 12일 제주시 내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피해자 A씨의 부인은 이같이 호소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그녀의 하소연은 2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평범한 40대 직장인인 A씨는 '외제차 수출 사기단'에 속아 지난해 9∼11월 2억 2천만 원 상당의 외제차 3대를 자신의 명의로 계약했습니다. 벤츠 신차 2대를 구매하고, 아우디 신차 1대는 리스했습니다.

그는 계약만 했을 뿐 차는 한 번 구경도 못 했습니다. 구경도 못 한 차에 지출하는 돈은 한 달에 원급 300만 원에 이자 200만 원을 합쳐 500만 원입니다.

A씨는 지난해 9월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인 B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B씨는 "돈 안 들이고,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있다. 같이하자"면서 A씨에게 만남을 제안했습니다.

A씨는 당시 "그런 사업이 어딨느냐.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B씨는 며칠 뒤 다시 A씨에게 연락해 "수입차 수출 사업인데, 1대당 2천만 원의 수익이 난다"며 A씨에게 거듭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만큼, 계속해서 제안을 거절하기 쉽지 않았던 A씨는 결국 며칠 뒤 집 근처 카페에서 B씨를 만났습니다.

카페에는 B씨뿐 아니라 B씨의 아는 선배인 C씨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번 사업과 관련해 미팅하던 중이라며 A씨를 앞에 두고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던 중 B씨의 또 다른 지인 D씨도 카페를 찾았습니다. 우연히 해당 카페에 왔다던 D씨는, "마침 잘 됐다"며 그 자리에 합석해 본격적으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들은 60개월 할부로 동남아나 중동에 수출할 고급 수입차를 사거나 리스하는 데 명의를 빌려주는 대신 1대당 2천만 원을 지급하고 차량 할부금도 모두 대납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신차를 구매해 한 번도 이용하지 않고 명의만 바꿔도 중고차로 취급돼 다른 나라에서 수입 시 관세가 면세되거나 감경된다고 설명하면서, A씨는 명의를 빌려주는 대신 이 관세 차액을 나눠 갖기만 하면 된다고 투자를 권유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관세 차액에서 2천만 원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계약한 수입차는 인천항에서 3∼4개월 보관 후 말소 등록해 수출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은 물론, 아내와 장인과 장모, 친척 등이 모두 이 사업에 투자했다면서 A씨를 현혹했습니다. 애초 계 모임 구성원끼리 소소하게 하다가 A씨에게도 사업을 소개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차 명의가 A씨 앞으로 돼 있는 만큼, A씨 동의 없이는 계약한 차를 어쩌지 못한다고 설명하면서 A씨를 계속해서 꼬드겼습니다.

그들은 "고급 수입차는 위치추적 장치가 설치돼 있다"며 직접 자신이 타는 수입차에 설치한 위치추적 장치와 연결된 휴대전화 앱을 보여주는 주도면밀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결국 A씨는 3개월간 자신의 명의로 고급 수입차 3대를 계약했습니다.

반신반의한 상태로 차 1대를 먼저 구매한 A씨는 차량 할부금이 제대로 납입되는 것을 보고 안심했습니다.

또 이 사업에 투자했다는 이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게 되면서 사업에 대한 의구심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주변에 지인들이 같은 사업에 투자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더욱 믿음을 갖게 되자 추가로 차 2대를 계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과 부산 등에서 과태료 납부 고지서가 날아왔습니다. A씨도 모르는 새 인천항에서 수출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차가 인천과 부산 등을 누비고 있던 것입니다.

A씨 명의의 수입차가 대포차로 쓰이면서 각종 과태료도 A씨의 몫이 됐기 때문입니다.

황당해진 A씨는 B씨 등에게 연락을 해 해명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제대로 대답은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결국 A씨는 12월 중순쯤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올해 들어 인천과 부산에서 장애인 주차구역 주정차 위반, 속도위반, 심지어 톨게이트비까지 날아온 과태료 액수만 16만이 넘습니다.

또 이들 일당이 차량을 말소시키겠다며 자동차 보험도 1∼2달만 계약한 탓에 100만 원 넘는 돈을 주고 자동차 보험 계약도 다시 했습니다.

그 사이 자동차 보험이 만기 된 줄 모르고 있던 터라 이에 따른 과태료 17만 원을 추가 지출했으며, 새해 들어서는 자동차세 17만 원도 납부했습니다.

또 리스차 대출금이 지급되지 않으면서 리스 차 업체 측에서 B씨를 형사고소가 한 상황입니다.

1대당 2천만 원씩 받기로 했던 수익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달까지 벤츠 차 2대에 대한 할부금만 납입됐습니다.

A씨는 갑자기 늘어난 빚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퀵 배달 등 소위 '투잡'을 하고 있습니다.

A씨 부인은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아 말소도 힘든 상황에서 매달 피해 금액을 갚기 위해 남편이 알바까지 하다 보니 생활이 너무 어렵다"며 "차를 되찾아 피해금 일부를 보전할 수 있도록 빠른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고소장 접수 4개월째인 현재까지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벌써 몇 개월이 지났지만, 수사는 조금도 진전이 없다. 사건이 경찰서에서 경찰청으로 이관된데다 경찰 인사이동이 있다는 이유로 담당 수사관조차 배정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소장 접수 후 경찰이 피의자와 통화까지 했지만, 조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피의자들이 잠적했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고소 이후에 그들이 연락해와 '경찰에서 나서지 않고 있지 않으냐. 자신들을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며 "경찰 조사가 빠르게 이뤄졌다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나오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A씨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수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 수는 280여 명이고, 전체 피해액은 60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경찰은 현재 모집책 4명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주범인 다른 지역 소재 무역회사 대표 50대 남성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남성은 가짜 이름을 사용하면서 경찰을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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