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메뚜기떼 쫓아라"…조종사들, 살충 전문가 된 사연
입력 2021-02-18 08:58  | 수정 2021-02-25 09:05

동틀 무렵 헬리콥터 한 대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메뚜기떼를 찾아 케냐 중부지역의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헬기 조종사 키에란 앨런은 얼룩말이 무리 지어 달리는 평원을 지나 드넓은 옥수수밭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숲이 우거진 계곡과 광활한 지대를 비행하며 메뚜기떼를 찾고 있다고 AFP 통신이 현지시간 17일 보도했습니다.

앨런은 인근 마운트케냐 지역의 산 중턱에 마련된 지상 통제실로부터 메뚜기떼를 발견했다는 무전을 받고서 기수를 돌립니다.

조종사는 메마른 목소리로 "나무들 사이로 메뚜기떼가 보인다"고 외치고서 30㏊에 이르는 지역을 뒤덮은 메뚜기떼를 가리킵니다.


붉은 핑크빛이 돌며 식욕이 왕성한 이들 메뚜기는 소나무 숲을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아직 근처 농장들이 피해를 보기 전에 앨런이 또 다른 헬기를 불러들이자 수 분 만에 도착한 헬기는 살충제를 살포합니다.

지상에서는 체온이 올라간 메뚜기들이 비 오듯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기 시작하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이들 중 많은 개체가 살충제 약 기운에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지난달에만, 앨런은 인근국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로부터 몰려온 메뚜기떼를 쫓아 지구 반 바퀴가 넘는 거리인 2만5천㎞를 비행했습니다.

앨런도 동료 조종사들처럼 소방·관광·인명구조 등 비행 임무를 수행하다 최근 메뚜기를 찾아 비행하는 메뚜기 전문가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는 마운트케냐 지역의 비옥한 땅을 가리키며 "저기 저 밀밭은 케냐인들의 식량창고다. 메뚜기떼가 이곳을 침범한다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기에 무서운 번식력으로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사막 메뚜기는 하루 150㎞까지 여행하고 매일 자신들의 몸무게만큼 푸른 잎을 먹어 치웁니다.

2019년 중반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에 수십 년만의 우기가 찾아오면서 출현한 메뚜기떼는 당시 인근 9개국을 강타하며 농작물에 해를 끼쳤습니다.

케냐와 같은 나라는 근 70년 만에 메뚜기떼의 피해를 보았던 터라 초기 대응은 형편없었고 살충제와 비행기도 부족한 상태였다고 나이로비에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를 위해 일하는 전문가 시릴 페란드는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메뚜기떼의 출현을 겪으며 케냐, 에티오피아, 그리고 소말리아 일부 지역에서 메뚜기떼 통제와 협력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FAO는 케냐에서 자연보호구역을 관리하는 데이터 분석 기업 '51 디그리'와 손을 잡고 메뚜기떼 퇴치에 힘쓰고 있습니다.

51 디그리는 소프트웨어를 밀렵과 불법 벌목 감시, 야생동물보호 등에 이용하다 최근 메뚜기떼 추적과 퇴치용으로 변경했습니다.

각 마을 책임자와 3천 명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무선 연락망을 통해 메뚜기떼에 관한 정보가 핫라인으로 전달되면 이윽고 헬기가 출격합니다.

FAO는 메뚜기떼의 크기와 비행 방향에 대한 데이터를 조종사들뿐만 아니라 소말리아, 케냐, 그리고 에티오피아에 있는 현지 기관 및 단체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페란드는 지난해 메뚜기떼의 내습으로 동아프리카에서 250여만 명이 식량부족과 생계위협을 겪은 데 이어 올해는 350만 명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측하고 메뚜기떼의 출현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마운트케냐의 메루 지역에 사는 농부 제인 가투므와는 4.8㏊에 이르는 자신의 옥수수·콩 밭을 뛰어다니며 고함을 지르고 양철 조각을 두드려보지만 게걸스러운 메뚜기떼는 달아날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가투므와는 "그들(메뚜기떼)이 5일 정도 여기 머물며 모든 것을 먹어 치웠다. 농작물을 키워 애들 학교 보내고 끼니를 해결한다"며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 큰일"이라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디지털뉴스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