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남자 많은 재일조선인이 범행"…혐한 인식 드러낸 램지어
입력 2021-02-17 14:48  | 수정 2021-02-24 15:05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뿐 아니라 다른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혐한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 연구가 또 확인됐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규정한 논문 내용이 단순한 연구 부족에서 발생한 해프닝이 아닌 일본 극우파에 경도된 미국인 교수의 신념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 '자경단: 일본 경찰, 조선인 학살과 사립 보안업체'에는 일제시대 당시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들이 적지 않게 발견됩니다.

램지어 교수는 먼저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인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정당화하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조선인이 목숨을 잃은 것은 맞지만, 방화 등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일본인이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입니다.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것은 유언비어라는 역사학계의 통설과 상충하는 주장입니다.


램지어 교수는 "역사가들이 조선인의 범죄를 순전히 헛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그 근거로 1923년 간토 대지진이 발생한 당시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 중 남성이 훨씬 많았다는 인구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1920년 인구 통계에 따르면 4만1천 명의 재일 조선인 가운데 3만6천 명이 남성이었고, 15~19세가 5천300명, 20~24세가 1만1천500 명, 25~29세가 8,400명, 30~34세가 5천 명이고 35~39세는 2천100명에 불과할 정도로 평균 연령이 낮습니다.

이어 "젊은 남성들은 세계 어디서든 인구학적으로 범죄율이 높다"며 "1923년 기준 남성 인구 10만 명당 범죄를 저지르는 일본 남성은 191명에 불과하지만 재일 조선인의 경우 그 비율이 10만 명당 542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재일 조선인의 수가 4만여 명에 불과해 규모 면에서 비교가 부적절했고, 일본에 대한 독립운동을 '테러'로 규정하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지적됩니다. 정황상의 근거만으로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을 부정하고 조선인이 실제로 대지진 당시 약탈과 방화, 강간을 저지르고 우물에 독을 탔을 수 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램지어 교수는 간토 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의 규모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며 '학살'이란 표현에 물음표를 달기도 했습니다. 논문에는 '숨진 조선인의 수가 2명보다는 많고 1만 명보다 적다'는 일본인의 조롱성 발언이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진희 이스턴일리노이주립대 사학과 교수는 "난징 대학살과 같은 대량 살상 사실을 부정하려는 세력들이 쓰는 주요 수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확한 희생자 숫자가 없으면 대량학살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일본 극우세력이 즐겨 사용하는 논리나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엉터리 역사 왜곡 논문이 하버드 교수의 명의를 내세워 세계 유명 학술 출판사가 게재하는 일이 없도록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백길종 디지털뉴스부 기자 / 100road@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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