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보툴리눔톡신제제(일명 보톡스) 등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으로 번진 한국 기업 간 영업비밀 침해 관련 분쟁의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문제는 정부 개입이 갈등 봉합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보툴리눔톡신 제재 관련 소송에서는 규제 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행보가 한 쪽에 수혜로 작용하기까지 하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 ITC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이차전지 영업비밀 침해소송의 최종 판결을 오는 10일 내놓을 예정이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이 재판부의 증거개시(Discovery)프로그램에 따른 명령을 어겼다는 LG에너지솔루션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ITC는 작년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 재심시를 진행해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한 토론회에서 이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미국 정치권에서도 제발 좀 빨리 해결하라고 하고 있다. 낯부끄럽다"며 양사 합의를 강한 어조로 촉구했다.
특히 그는 "양사 최고 책임자와 연락도 해봤고, 만났다"며 "국민에게 이렇게 걱정을 끼쳐드리면 되느냐, 빨리 해결하시라고 권유했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배터리 소송의 해결을 위해 움직였다는 걸 내비친 것이다.
실제 지난 2019년 9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중재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회동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후에도 합의 가능성만 수차례 제기됐을 뿐 여전히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특히 합의금 문제에서 입장 차이가 크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수조원 수준을, SK이노베이션 측은 수천억원 수준을 각각 생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리의 발언 이후 양측은 "경쟁사가 진정성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언제든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LG에너지솔루션), "모든 소송 과정에 성실하게 임해왔음에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SK이노베이션) 등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보툴리눔톡신제제 분쟁에서는 소송과는 별개로 이뤄진 식약처 처분이 갈등을 격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식약처가 약사법 위반을 이유로 지난달 26일 메디톡스의 액상형 보툴리눔톡신제제 이노톡스의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내리자, 대웅제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이노톡스에 대한 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다. 대웅제약이 FDA에 조사를 요청한다는 데 메디톡스가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양측 사이에서는 또 다시 설전이 붙었다.
최근 1년새 식약처는 세 차례에 걸쳐 메디톡스의 보툴리눔톡신 제제 대부분에 대한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내리는 과정에서 '특정기업 때리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특히 메디톡스가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은 의약품을 수출입업자에게 넘긴 걸 국내 유통으로 간주해 작년 11월 20일자로 메디톡신 등 5개 품목의 허가를 취소한다고 발표한 뒤 논란이 거세졌다.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수출용 제품을 수출입업체를 통해 간접수출하는 사례가 더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다른 기업에 대한 추가 조사에 식약처가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는 비슷한 사안에 대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상 기업을 비롯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조사 중인 사안이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최근에는 "대웅이 부적절한 수단으로 메디톡스 균주를 획득했다는 예비판결 판단이 증거로 뒷받침된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 ITC의 최종판결문이 공개된 뒤에는 '봐주기' 논란도 제기됐다. 보툴리눔톡신제제의 허가 신청 서류에는 균주 출처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는데, 지금까지 대웅제약 측이 한 주장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메디톡스가 과거 허가 내용과 다른 원액을 사용해 보툴리눔톡신제제를 제조했다는 등의 검찰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식약처가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내리면서 "서류 조작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하게 단속·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힌 게 논란을 키웠다.
이 같은 논란에 식약처 관계자는 "보툴리눔 균주의 출처에 대해서는 질병관리청이 신고를 받고 부여한 관리번호를 근거로 허가심사 업무를 한다"고 해명했다. 균주 출처는 식약처 소관이 아니라 질병관리청이라는 것이다. 다만 "(미 ITC 판결 내용은) 안전성과 유효성과 관련이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질병관리청은 국내 보툴리눔톡신제제 제조 기업들이 보유한 균주 출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경우 매경닷컴 기자 cas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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