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 대학 무용과 교수 A씨의 공연에 참여한 무용수들은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후원 기업이 무용수 각자에게 입금한 공연비를 A씨가 자신의 계좌로 이체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전문무용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리랜서 무용수들이 약속받은 공연비를 떼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용수들은 예술용역 제공에 대한 계약서도 작성하지 못 하고 일부 권위자의 공연에서는 공연 준비비 부담과 티켓 판매까지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무용 관계자들은 무용 용역 착취의 원인으로 계약서를 쓰지 않는 관행을 지목한다. 29일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무용수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연에 참여하는 비율은 37.1%에 불과하다. 구두계약이 11%, 작성하지 않음이 45.9%, 무응답이 6%였다. 프리랜서 무용수 B씨는 "금액 등을 명시한 계약서가 없다보니 공연비를 주지 않거나 약속보다 적게 지급하는 경우가 잦다"고 증언했다.
무용 용역 계약에서 계약서 작성을 안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예술인복지법에 따르면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은 계약 금액와 기간, 수익 배분 사항 등을 서면으로 명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동법 5조에 따라 정부가 표준계약서도 보급하고 있으나 서면계약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관계자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을 낀 공연이 아니면 대부분 계약서 작성 없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계약서 작성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무용계 내부의 권력관계 때문이다. 시립 무용단원 C씨는 "좁은 무용계에서 교수 등 권위자에게 잘 보여야 해 계약서나 돈 얘기를 감히 꺼낼 수 없다"며 "(공연비를) 주시면 감사한 거고 못 받아도 요구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
일각에서는 무용수가 권위자의 공연에 참여하는 것이 교육이자 기회이기 때문에 공연비를 지급하지 않는 거라는 견해도 제기된다. 예고 무용강사 D씨는 "교수의 공연에 참여하면 배우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용으로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 무용수 사이에서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의 무용과 대학원생 E씨는 "교수의 공연 동원을 비판하는 학부생들의 대자보가 붙어 대학원생들로만 공연을 한 적 있다"고 밝혔다.
무용을 생업으로 하는 전문무용수들은 공연비 체불과 삭감이 이어지며 만성적인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무용활동을 통한 무용수의 연 수입은 평균 480만원에 불과하다. 사립 무용단원 F씨는 "무용을 부잣집 자제들이 편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경제 문제 때문에 유능한 무용수들이 승무원, 필라테스 강사 등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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