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혁신보다 사람먼저"…`안전 치외법권` 테슬라, 한국법 따라라
입력 2020-12-24 15:59  | 수정 2020-12-24 16:20
테슬라 화재(좌측 위는 독자 제공, 아래는 용산소방서 제공)와 모델X 소개 사진 [사진 출처=독자, 용산소방서, 테슬라 사이트]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한국에 오면 한국법을 따라야 한다. 사람의 생명과 관계됐다면 법 규정 여부를 떠나 반드시 지키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전기차 대명사' 테슬라에는 예외다. 테슬라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국내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됐다. 테슬라는 국내 안전 측면에서는 '치외법권' 혜택을 누렸다.
테슬라 잘못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 차 중 한국에서 1년간 5만대 이하로 팔린 브랜드는 미국 안전기준만 준수하면 된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차량이 파손되거나 탑승자가 다치는 수준보다 심각했다. 사망 사고다.
테슬라 차량 화재 [사진 제공 = 용산소방서]
지난 9일 테슬라 모델X가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벽면과 충돌해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석에 있던 대리 운전기사는 살아서 나왔다. 차주 윤모씨(60)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차 안에 남았다. 주차장 직원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출동한 소방관들도 차량 문을 열 수 없었다.
소방관들은 뒷문을 열려고 했다. 뒷문은 일반적 자동차 문과 달리 갈매기 날개처럼 위아래로 여닫는 팔콘 윙 구조라 기존 장비로 뜯는 데 애를 먹었다. 소방관들이 특수 장비로 뒷좌석 문을 강제로 열었다. 차주를 살리기에는 늦었다.
테슬라 모델X [사진 출처 = 테슬라 사이트]
사망사고 원인을 두고 모델X에 적용된 도어 핸들 방식에 치명적 안전 결함이 있어 구조 타이밍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자동차업계에서 제기됐다.
모델X는 도어를 여는 핸들이 차체에 매립되는 '플러시 타입 아웃사이드 도어 핸들'을 적용했다. 공기저항을 줄이고 디자인도 매끄럽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또 기계적인 연결 없이 전기 스위치 방식으로 도어를 열 수 있게 구성됐다.
혁신과 멋을 추구했지만 안전에 소홀한 방식이다. 충돌 뒤 화재로 전원이 차단되면 외부에서 손잡이인 핸들을 잡아 당겨 도어를 열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창문을 깨야만 탑승자를 구할 수 있다.
국산차는 다르다. 비상 상황 때 승객 구조를 위해 도어를 언제든 열 수 있도록 제작된다.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때문이다. 차량이 충돌 후 모든 승객이 공구를 사용하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좌석 열당 1개 이상의 문이 열리도록 설계하라고 규정됐다.
테슬라 모델X [사진 출처 = 테슬라 사이트]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충돌사고 및 화재로 승객 구조가 필요한 상황에 대비한다. 충돌 때 잠금 해제(CRASH UNLOCK) 기능을 통해 도어 잠금 장치를 풀 수 있도록 만든다.
도어 잠금장치(래치)와 케이블 등을 통해 기계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적용한다. 차량 전원 상실 여부와 상관없이 수동으로 핸들을 조작해 도어를 열 수 있다.
현대차 넥쏘도 모델X처럼 플러시 타입 아웃사이드 도어 핸들을 적용했다. 모델X와 달리 충돌·화재 등으로 전원을 작동할 수 없을 때 외부에서 문을 열 수 있다.
테슬라가 '준수'하는 미국 기준에는 '차량 충돌 때 문이 열려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테슬라 도어 문제는 또 있다. 테슬라 차량 뒷좌석은 전원차단 때 기계적으로 문을 여는 장치가 내부 도어 핸들에 없다. 좌석 아래나 스피커 커버 안쪽 등에 숨겨져 있다. 개폐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구조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테슬라 모델X [사진 출처 = 테슬라 사이트]
테슬라는 혁신은 '최고'이지만 차량품질은 '최악'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안전불감증'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차량 품질은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차량을 만든다면 품질 향상과 안전성 향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차량은 스마트폰이나 전자제품이 아니다. 차량 품질은 탑승자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직접 영향을 준다. 품질과 안전을 소홀히 한다면 그 순간 차량은 '달리는 흉기'가 된다. 혁신보다 사람이 먼저다.
법원은 모델X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고 차량을 보내 조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테슬라 차량 화재 [사진 출처 = 독자제공]
국토교통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미 FTA상 안전기준을 위반한 건 아니더라도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면 리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테슬라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한국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 안전연구원의 사고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테슬라에 시정조치를 요구할 예정이다.
시민단체는 안전 기준 강화와 함께 소방당국에 제공할 '사고 대처 구조 매뉴얼'도 마련해야 하다고 지적한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차량 충돌테스트를 통해 도어가 사고 후에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책은 없는지 파악하고 이를 정비 매뉴얼로 만들어 공개해야 한다"며 "앞으로 비슷한 사고나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소방당국이 정비 매뉴얼을 인명 구조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도 나섰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김포시을)은 이번 사고에 대해 "자동차 기본은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설계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 안전권 확보를 위한 후속 입법 활동과 정책보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gistar@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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