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S아파트 전용 59㎡(17층)를 2억15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한 A씨는 해당 물건의 직전 매매가격을 알고 깜짝 놀랐다. 10여일 전인 지난 달 25일 임대인 B씨가 매입한 금액이 2억500만원으로 본인의 전셋값보다 쌌기 때문이다. 전셋값이 매매가격보다 1000만원 더 비싸 B씨가 자기 자본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역(逆) 갭투자'로 집을 매입했던 사실에 A씨는 부러움과 동시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다. 전세가격 상승폭이 집값보다 크기 때문인데 고강도 규제로 한동안 잠잠하던 '갭투자(매매가와 전세가 차액으로 부동산을 소유하는 투자방식)'도 다시 늘고 있다.
24일 KB부동산 리브온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월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지난 10월(65.5%) 대비 1.3% 포인트 올른 66.8%를 기록하며, 9월 이후 3개월 연속 상승했다. 지난 1월(66.9%) 이후 최고치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은 지난 1월 이후 내리 하락하다가 9월(64.7%)부터 반등세를 탔다. 수도권 전세가율이 3개월 연속 상승한 것은 2016년 4~6월 이후 처음이다.
업계는 전세가율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최근 전세난으로 급등한 전셋값을 매매가격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집값도 오르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전셋값이 뛰면서 전세가율이 높아지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위 사례 같이 일산서구 일대는 매매가격과 전셋값이 같거나, 가격 차이가 1000만원 미만인 단지가 최근 3개월간 16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탄현동 G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김포와 파주가 한 달 간격으로 규제 지역으로 묶이면서 일산에 풍선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수도권 전셋값 상승과 맞물려 갭투자 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강남권 아파트 역시 '갭 투자' 여건이 더 좋아졌다.
서초구 '롯데캐슬클래식' 전용 84㎡의 경우 지난 7월 21억6000만원(국토부 실거래가 자료 참고)에 매매거래됐다. 같은 달 전세가 10억 원에 거래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세를 끼고 매수할 경우 11억600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달 실거래가와 전세가는 각각 21억8000만원, 12억원으로 '갭'이 9억원대로 낮아졌다.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5㎡ 역시 7월 갭이 12억5500만원(매매가 26억5500만원, 전세가 14억원)이었지만, 이달 들어 10억4500만원(매매가 28억4500만원, 전세가 18억원)으로 줄었다. 잠실동 '트리지움' 전용 84㎡도 전세를 끼고 9억7000만원(매매가 20억8000만원, 전세가 11억1000만원)에 실거래 됐다. 이는 갭이 11억~12억원 수준(매매가 21억5000만원, 전세가 9억5000만~10억5000만원)이었던 7월보다 최소 1억3000만원 이상 줄어든 가격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가격 통계를 보면 지난 7월 이후 4개월간 강남 4구 아파트의 매매가는 0.20% 오르는 데 그쳤지만, 전세는 이를 훨씬 웃도는 3.1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송파구는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매매는 0.20% 올랐지만 전세는 3.26% 뛰었다.
정인택 JNK개발원 원장은 "강남의 고가 아파트는 보통 대출 금지선인 15억원을 넘어 대출이 아예 나오지 않아 단번에 매수하기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최근 급등한 전셋값이 '대출금'의 역할을 하면서 갭 투자가 이전보다 쉬워졌다"고 말했다.
전세난을 해소하지 않는 한 갭투자 수요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갭투자로 전세 물량이 늘어도 갭투자가 전세가를 밀고, 전세가가 집값을 밀어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원장은 "전셋값이 오르면 결국 집값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초래하기 때문에 전세 매물을 늘릴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robgud@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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