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인기척] 거리두기로 문 닫은 심야식당들…야간 노동자는 어떡해요?
입력 2020-12-25 07:00 
'빈차' 표시등을 밝힌 택시 / 사진=MBN 온라인뉴스팀
[인]턴[기]자가 [척]하니 알려드립니다! '인기척'은 평소에 궁금했던 점을 인턴기자가 직접 체험해보고 척! 하니 알려드리는 MBN 인턴기자들의 코너입니다!

"요즘 누가 밥 먹어가며 일하나요?"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어둠을 뚫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하루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됩니다. 배꼽시계도 조금 다르게 흘러갑니다. 코로나 19 거리두기 2.5단계에서는 오후 9시부터 오전 5시까지 식당 내 취식이 금지됩니다. 야간 노동자들은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참다 참다 배고프면 냄새 안 나는 빵만"

지난 17일 해가 뉘엿뉘엿해질 즈음, 55살 택시기사 신동영 씨는 어김없이 택시 등에 불을 켰습니다. 14만 8천원 사납금을 내지 못하면 생돈을 고스란히 회사에 내야 하기에 손님이 없더라도 거리에 나서야 합니다. 신 씨는 택시 한 대를 낮 근무 기사와 나눠서 사용합니다. 그는 거리두기 대책 후 어떻게 식사를 하냐는 질문에 "굶으면서 일하는 날이 많다. 새벽 두세 시가 되면 정말 배가 고프다"라고 했습니다. "아주 배가 고픈 날에는 노점 트럭을 찾아 만두나 김밥을 사 먹기도 하는데 이마저도 불법 노점을 단속한 날이면 찾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노점을 찾지 못하는 날은 어떻게 할까요? 신 씨는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편의점에서 냄새가 안 나는 빵을 사다가 손님이 없을 때 차에서 빨리 먹어야죠."

▲"쉼터 다과도 없어지고…그냥 굶어요"

대리운전 기사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만난 기사들은 "식당도 안 하는데 어떻게 밥 먹어가며 일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대리기사들은 "여기 밥 먹고 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일을 하는 중간중간 몸을 녹이려 쉼터에 들르기도 하지만, 전에는 이곳에서 간단한 다과를 섭취하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이마저도 어렵게 됐습니다. 쉼터 담당자는 "쉼터에 비치해 두던 간단한 다과도 코로나 19 감염을 막기 위해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차 안에 냉장고 마련하기도

11톤 화물차를 운전하는 28살 김종민 씨는 아예 차 안에 낮은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냉장고를 마련했습니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뒀다가 차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섭니다. 차 안에서 냉장 보관된 제품들만 먹다보면 제대로 된 ‘한 끼는 아무래도 포기하게 됩니다. 이에 김 씨는 "화물차 야간작업을 하다 보니 이제는 차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게 아무렇지 않다"고 덤덤하게 말하네요.

김종민 씨가 운전하는 화물차(오른쪽)와 차량 내부에 마련한 냉장고(왼쪽). 냉장고 안에는 젤리와 유산균 음료 등 요깃거리가 들어있다. / 사진=MBN 온라인뉴스팀

사실 큰 주차공간이 필요한 화물차는 마땅한 음식점을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는 "기존에도 차를 댈 수 있고 영업을 하는 식당이 보이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들이 있을 텐데요. 김 씨는 그럴 때 새삼 코로나19로 달라진 풍경을 실감합니다. 그는 "9시 이후에 식당을 찾았다가 문이 닫혀있는 걸 확인하고 '아차'할 때가 있다"라며 "코로나 이전에는 물류센터에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이나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아 끼니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해장국 가게 앞에 주차된 택시들 / 사진=MBN 온라인뉴스팀

▲24시간 식당도 씁쓸 "빈속으로 돌아가는 모습, 안타깝죠"

지난 22일 택시 기사들이 새벽 시간 즐겨 찾았다는 영등포구의 한 24시 해장국 집을 찾았습니다. 영업 마감을 한 시간 앞둔 오후 8시. 택시들이 주차장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식당 입구에는 "05시부터 21시까지만 영업합니다"라는 안내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39살 서정수 씨는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이후 며칠 동안은 9시 이후에도 '밥 한 그릇 달라'며 찾아오는 기사들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서 씨는 "9시 이후 음식을 내어 주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라며 "돈을 벌려고 장사를 하지만, 택시기사들이 밥을 못 먹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라고 말했습니다.

영업시간 안내(왼쪽)와 기사식당의 모습(오른쪽). / 사진=MBN 온라인뉴스팀

인근에 있는 24시 기사식당에서 또 다른 사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야간 장사가 가게 수입의 대부분"이라는 64살 조동석 씨는 식당 내 취식이 불가능해지면서 기존에 하지 않던 음식 포장을 개시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접어야 했습니다. 조 씨는 "기사들이 냄새가 날까 염려해 차 안에서 포장 음식을 먹지 않아 수요가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편의점 테이블에 올려둔 취식금지 안내 / 사진=MBN 온라인뉴스팀

▲편의점도 밤 9시면 의자 정리..."괜히 미안해요"

공단 근처 편의점에서 야간에 근무하는 24살 김미리(가명) 씨는 9시가 다가오면 가게에 마련돼 있는 의자를 치우기 시작합니다. 밤 시간대 통근버스에서 내린 공단 근무자나 화물차 기사, 대리운전 기사들이 채웠던 자리입니다. 그는 "거리두기 대책으로 매장 내 취식이 안 된다는 안내를 하면 계산대에 올린 컵라면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두는 손님이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야간에 식당은 당연히 갈 수 없을 테고, 편의점만 보고 왔을 손님을 그냥 보낼 때면 미안하다"고 전했습니다.

▲사각지대 속 익숙해진 배고픔

이야기를 들려준 야간 근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굶어야지 어쩌겠나." 그들은 근무 중 배고픔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동 이슈를 다루는 서울노동권익센터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도 거리두기 격상 이후 야간노동자의 식사 대책에 대한 논의를 확인할 순 없었습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관련된 불편 사항이나 문의를 받은 바가 없다"라고만 말했습니다.

사진=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는 "야간 이동노동자들은 특수고용형태에 놓여 있는 만큼 먹는 문제나 복지를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는 구조"라며 "약자 신분이다 보니 문제가 있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고 자연스레 공론화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의 고충을 대변할 수 있는 기구나 조직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야간노동자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강구돼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사회에 이런 따끔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사람이 먹어야 일을 하죠. 어떻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굶고 일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방역이란 이름으로 누군가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사각지대는 없는지 점검이 필요해보입니다.


[MBN 온라인 뉴스팀 황인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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