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300여일째 공수처법 위헌판단 미적, 헌법재판소도 권력 눈치 보나
입력 2020-12-14 09:12  | 수정 2020-12-21 09:36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이 지난주 국회를 통과하면서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둘러싼 여야 기싸움이 팽팽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법에 따라 이른 시일내 후보 추천위를 재소집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 힘은 "집권 여당이 협상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을 내려꽂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며 "후보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여야는 공수처장 인사청문회와 공수처 검사 추천을 위한 인사위원회 구성을 놓고도 갈등을 빚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내년초 공수처 출범'까지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공수처법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당이 이번에 공수처장 추천위원회(7명) 의결 정족수를 6명에서 3분의 2(5명)로 완화한 것은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장치인 야당 거부권을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헌법 원리와 법치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여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야당과의 협의나 토론도 없이 개정안을 밀어붙인 것도 국회법 절차와 의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폭거나 다름없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주도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국민 중 54.2%가 "잘못된 일"이라고 응답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수처가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등을 가진 막강한 특별사정기구인데도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 또한 헌법에 규정된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공수처가 검찰·경찰이 수사하는 공직자 범죄사건을 이첩받을 수 있게 한 것도 헌법 원리인 견제와 균형에 맞지 않는다.
헌법에 보장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과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침해할 가능성마저 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조차 '민주주의를 무시한 위험한 법'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당론에도 불구하고 소신과 양심에 따라 국회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표를 던진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논객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신간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정권은) 이 법에 반대하면 수구 기득권세력이라는 딱지 붙이기에만 열을 올린다"며 "편을 가리지 않고 법 적용이라도 공정하게 하면 모르겠는데 그건 전혀 딴판이다"고 꼬집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 조직의 절반(3000명)이 해당되는 사법부도 "공수처가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매년 3000~4000건씩 재판부에 대한 진정과 민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공수처가 고소고발 사건을 이유로 정권에 밉보인 판사들에 대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혐의 등을 적용해 수사하면 재판의 독립성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 대립과 국론 분열,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국가적 혼란을 막으려면 헌법재판소가 공수처 출범 전에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을 신속히 내리는 수 밖에 없다.
현재 헌재에 제기된 공수처법 관련 위험심판청구 사건은 2건이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올 2월20일, 보수 변호사단체인 '한반도평화와인권을위한변호사모임은 5월11일 각각 "공수처의 위헌여부를 판단해달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는 위헌심판 첫 청구 이후 300여일이 되도록 판단을 미루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진보성향 재판관들이 과반을 차지하는 헌법재판소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유남석 헌재 소장이 진보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도 우리법연구회와 후신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민주화변호사모임 출신이고 장관급인 박종문 헌재 사무처장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법조계에선 "거대 여당의 입법폭주에는 헌재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여당의 위헌적인 법안처리에 대해 시민단체나 야권이 헌재에 제소해도, 헌재가 국회의 입법자율권을 이유로 늘 소극적인 결정을 하면서 여당의 입법독주를 키웠다는 것이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입법 자율권은 헌법상의 권한이지만 헌법의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는 국회의 권한"이라며 "위헌적 법률을 무더기로 제조해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을 어떻게 자율권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민주주의의 존립 근거는 견제와 균형을 위한 권력분립이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간에 상호 견제와 감시가 무너지면 국민의 기본권은 유린되고 민주주의도 후퇴할 수 밖에 없다.
헌재가 여당의 공수처법 강행처리에 따른 국가적 혼란과 갈등을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헌법수호 차원에서 존재의 이유를 국민 앞에 당당히 보여줘야 할 때다.
[박정철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주하의 MBN 뉴스7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