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권력 심기만 살피는 경찰, 섬겨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입력 2020-12-10 09:14  | 수정 2020-12-17 09:36

권력의 심기를 살피는 경찰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보수진영과 야권 인사들에 대해선 서릿발처럼 엄격한 사법잣대를 들이대면서 진보진영과 정권 실세들에 대해선 봄바람같은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경찰이 지난 8일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운영하는 강용석 변호사를 허위사실유포혐의로 전격 체포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강 변호사는 올 3월 유튜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만희 신천지 교주가 악수하는 모습이라며 사진 한 장을 공개했으나 사진 속 인물은 이 교주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강씨측은 이에 대해 "정정보도와 사과방송을 했다"고 하는데도 경찰은 강 변호사 자택에 들어가 식사 중이던 그를 체포하고 연행했다고 한다.
강 변호사 그동안 경찰의 4차례 출석요구에 불응한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사람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한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자 횡포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 7월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항의 차원에서 신발을 던진 정모씨에 대해서도 공무집행방해와 건조물침입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바 있다.
또 지하철역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돌리던 50대 여성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팔을 등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운 뒤 끌고 가기도 했다.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지는 것은 국가 지도자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는 만큼 자제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들이 불만을 표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2008년12월 이라크에서 현지 기자로부터 신발 투척을 당했을 때 "이런 일도 일어나는게 자유사회"라고 웃어넘겼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2002년11월 전국농민대회에서 연설을 하다가 날아든 계란에 얼굴을 맞았지만 "달걀을 맞아 일이 풀리면 얼마든지 맞겠다"고 통큰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경찰이 문 대통령 눈치를 보면서 구속영장 신청과 같은 과도한 대응에 나선 것은 결국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경찰의 과잉 충성은 이 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드루킹 댓글 수사와 관련해 최초 압수수색을 통해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도 외면했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도 정권 핵심인 광역단체장 관련 기록을 제외했다는 의혹으로 빈축을 샀다.
또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의혹 사건과 관련해 2018년 3월 지방선거를 석달 앞두고 야당 출신인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의 공천 확정일에 비서실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해 선거개입 의혹을 사기도 했다.
올해에는 지난 10월 개천절과 한글날에 보수단체들의 대규모 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병력 1만명 이상을 동원해 서울 광화문 일대를 원천봉쇄하고 경찰버스 30대를 잇대 4km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이것도 모자라 광화문 부근 차량들의 앞뒤 창문을 내리게 해 검문하는가 하면, 지나가던 시민들을 상대로 통행 이유를 묻고 신분증을 확인하는 불심검문까지 벌였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은 안중에도 없었다.
반면 친정부 성향의 진보단체나 노동계 집회에 대해선 경고 방송만 하는 등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러니 국민들 사이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공권력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각에선 "경찰이 아무리 국민들 비판을 받아도 청와대에서 칭찬만 받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젖은 것 같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경찰이 이처럼 권력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것은 무엇보다 현 정권 덕분에 '공룡경찰'로 불릴 만큼 조직과 권한이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에 수사개시권과 1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했고 법 개정을 통해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넘겨줬다.
지난 9일에는 국회에서 경찰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경찰청장 산하에 국가수사본부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줬다.
개정안에는 경찰청장이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 수사'에는 개입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앞으로 경찰이 언제든지 청와대 하명수사에 나설 개연성이 크다.
1970~780년대 권위주의정권 시절처럼 경찰이 권력의 입김에 따라 무차별적인 보복·표적· 편파수사 등을 일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통제장치는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의 역할은 치안 유지를 통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사품을 내려준 정권에 보답하기 위해 법과 원칙을 외면하고 정권 입맛에 맞게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경찰의 사명이 아니다.
일부 수뇌부를 제외한 대다수 일선 경찰은 오늘도 권력 비위 맞추기보다 민중의 지팡이로서 박봉과 열악한 대우 속에서도 밤잠을 설쳐가며 묵묵히 일하고 있다.
경찰이 정권 수호보다 국민을 먼저 섬기고, 공공의 안녕을 위해 진력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이 '괴물'이 아닌 '정의의 파수꾼'으로 거듭 나기를 바란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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