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핫이슈] "공수처법대로라면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없어질 것"
입력 2020-12-09 09:53  | 수정 2020-12-16 10:06

애초에 검찰 개혁이 필요하기는 했다. 나 역시 그 필요성에 공감했다. 검찰이라는 한 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구조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영합하기 쉽다고 생각해서였다. 그 본성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그 본성을 깨우고 활개치게 할 거라는 걱정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권력 남용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를 만든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을 일부라도 깰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나가도 너무 나갔다. 지난해 말에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가 사실상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를 독점하게 된다. 판사와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는 기소까지 독점한다. 지난 8일엔 공수처장 임명에 야당의 비토권을 폐지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여당이 원하는 인물로 공수처장이 임명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수처의 수사 독점은 공수처법 24조 때문이다. 법 24조 1항은 '수사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에 대하여 처장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데, 공수처가 '우리가 수사하겠으니 넘겨달라'고 하면 검찰이 넘겨줘야 한다는 뜻이다.

검찰이 공수처 몰래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수도 없다. 24조 2항은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인지했다면 무조건 공수처에 알려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24조 1항과 2항 덕분에 공수처는 모든 고위 공직자 사건을 독점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검찰이 고위 공직자 사건을 수사할까? 범죄 혐의를 인지하면 공수처에 알려야 하는데, 굳이 범죄 혐의를 인지하려고 할까? 사기업이든 공조직이든 웬만큼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남에게 맡겨야 하는 일을 미리 챙겨볼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혐의를 발견한다고 해도 '아니겠지'하고 넘겨버릴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혐의를 인지하고 수사에 들어가더라도 공수처가 넘겨달라고 하면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다. 속 된 말로 '죽써서 개주는 격'이다. 열심히 수사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밝혔듯이, 공수처는 검사와 고위 경찰에 대한 기소권까지 갖는다. 이들에 대한 수사도 하고 기소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게 되면 권력 남용 가능성이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확증 편향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편향이 있다. 수사를 맡는 사람은 이 같은 확증 편향을 피할 수가 없다. 일단 누군가를 범죄 혐의자로 보게 되면, 유죄 증거를 열심히 찾게 된다. 반대 편 증거는 소홀히 하게 된다. 눈에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억울한 사람이 범죄자로 몰릴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사하는 사람의 확증편향을 제어할 외부 견제 장치를 둬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다. 다시 말해 수사하는 사람이 기소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기소권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수사권을 가진 사람이 확증 편향에 빠져 무고한 사람을 수사하지는 않았는지, 범죄 혐의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지는 않았는지 따져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사권을 가진 사람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범죄 혐의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섣부른 심증 만으로 혐의자의 사돈에 팔촌까지 탈탈 터는 식의 수사를 못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기소권자를 설득해 기소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의 폐해를 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공수처는 앞서 밝혔듯이 검사와 경찰에 대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갖게 된다. 만약 공수처장이 정치적 확증편향에 사로잡힐 경우 어떻게 될까? 만약 특정 검사와 특정 경찰에 대해 편향을 갖게 되면 어떤 결과를 빚을까? 수사 대상이 되는 검사와 경찰 입장에서는 두렵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이 때문에 공수처는 검사와 경찰의 갑이 되고, 검찰과 경찰은 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검찰과 경찰은 공수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공수처장의 편향에 어긋나는 수사는 하지 않을 것만 같다. 예를 들어 공수처장이 정권의 강력 지지자라면, 정권을 건드리는 수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이 공수처장이 될 경우,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물 건너 갔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공수처가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도맡을 수도 있다. 이는 공수처장이 누가 되느냐를 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까지도 수사할 수 있는 강단이 있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인지, 아니면 친여 성향이 강한 사람인지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 막강할 권력을 가질 공수처는 누가 견제할 수 있을까? 과연 검찰이 견제할 수 있을까? 현재 구조로는 '아니올시다' 쪽으로 답이 기운다. 앞서 밝혔듯이 앞으로 검찰도 공수처 앞에서는 을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기소권을 갖는 고위공직자 처벌에 대해서도 공수처를 견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공수처가 수사하고 검찰에 기소를 의뢰하면 검찰은 그대로 기소하는 관행이 생길까 걱정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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