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약세로 달러 대비 원화 가치 '1100원 장벽' 붕괴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이달 서학개미(뉴욕증시에서 투자하는 한국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미국 주식을 더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수 인기1위' 테슬라 주식을 통합증거금을 활용해 매수한 경우 수익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11%포인트(p) 높다는 국내 증권사 분석도 나왔다. 투자자들은 원화 강세를 '기회'로 보면서 환전·매수 타이밍을 재는 분위기다.
2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매수액이 총 90억5103만달러(약 10조14억원)를 기록했다. 이달 1~27일을 기준으로 한 결제금액으로 지난 10월 한 달(총 73억2193만달러)보다 23.62%늘어난 것이다. 이달 원화 강세가 이어져 환율 1100원 장벽이 무너질 가능성도 제기돼지만 오히려 매수세가 확대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7일 달러·원화 환율은 1103.20원으로 10월 한달 평균(1141.93원)보다 3.39% 떨어졌다. 그만큼 원화 가치가 올랐다는 의미다.
한국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것은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다. 이달 테슬라 매수 결제금액은 총 11억7149만달러로 전체 미국 주식 매수액의 12.94%를 차지했다. 테슬라는 '뉴욕증시 대표 주가지수'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편입 소식이 나온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후 연일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우며 10거래일도 안되는 동안 주가가 32.64%뛴 결과 시가 총액이 5000억달러를 돌파한 상태다.
뉴욕증시에서 전기차 투자 열풍이 불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중국 전기차' 주식까지 앞다퉈 사들이면서 해당 종목이 이달 들어 사상 처음으로 매수 상위 종목으로 꼽혔다. 중국 전기차 니오와 샤오펑은 애플을 제치고 테슬라에 이어 각각 2,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매수 상위 1~3위가 전부 전기차 주식인 셈이다. 원화 강세는 미국 주식을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사들일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 속에 주가 급등세를 보이는 종목에 매수가 집중된 결과다.
한편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재확산 속 달러 약세·원화 강세가 두드러지면서 내년 달러화 가치가 최대 20%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월가 추정까지 나오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환전 타이밍이 또 다른 수익률 변수로 떠올랐다. 원화 강세가 대세처럼 자리잡았지만 최적의 환전 타이밍을 예측하기 힘든 데다 뉴욕증시가 열리는 시간대는 시차 상 은행 창구를 통한 실시간 환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증권사 통합증거금을 활용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증권이 '테슬라' 고액(5억원 기준) 투자 고객 사례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7월 1일~11월 2일 동안 통합증거금을 활용해 다섯 번에 걸쳐 환전해가며 해당 주식을 사들인 경우 27일 기준 원화 환산 수익률이 57.43%이었다. 반면 7월 1일 5억원을 달러 당 1203.40원에 한 번에 환전 후 11월 2일까지 해당 주식을 다섯번에 걸쳐 매수한 경우를 가정한 원화 환산 수익률은 54.32%였다. 금액 상으로는 약 1555만원 차이가 발생한다. 투자 규모가 클 수록 금액 차이가 커진다.
통합증거금은 환전 비용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오히려 수익률이 3.11%p높았던 셈이다. 이유는 추세적으로 원화 가치가 올랐기 때문이다. 통합증거금을 활용하지 않고 한꺼번에 환전한 경우 원화 가치는 1203.40원이지만 통합증거금을 활용한 경우는 평균 1175.36원이었다.
통합증거금은 증권사 계좌에 있는 원화로 해외주식을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실시간 환전해주는 서비스다. 현재는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유진투자증권 등이 실시하고 있고 키움증권은 내년 상반기 중 도입 예정이다.
통합증거금은 당일 국내 주식 매도 결제 예정 금액이 증거금인데 이 증거금으로 저녁 시간 해외 주식을 매수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실제 환전은 한국시간 '당일'이 아니라 '다음 영업일'의 1회차 매매기준율로 정산이 이뤄진다. 이때문에 '장외환전수수료'가 붙는다. 또 실제 정산이 이뤄지는 기준일인 '다음 영업일'에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원화를 더 내고 달러를 사들인 셈이 돼 환전 손실을 볼 수 있지만 원화 가치가 오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편 월가는 달러 약세가 내년 대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원화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시티그룹은 내년 달러 가치가 20%가량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6%, ING는 10% 하락을 예상했다. 지난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은 달러화 가치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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