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자들이 모여 정부가 시행중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대해 쓴 소리를 냈다. 화평법·화관법이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상 안전과도 거리가 먼 법이라는 지적이다.
대한화학회는 27일 '소재·화학산업을 살려줄 화평법·화관법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산업현장의 현실을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유럽연합(EU)의 REACH(신화학물질규제)의 일부만을 수용한 화평법과 화관법의 과도하고 불합리한 규제는 실질적으로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화평법에 따라 화학물질의 위해성 정보를 평가해서 정부에 등록하는 것으로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의 현실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게 대한화학회의 의견이다. 학회 측은 "오히려 정보의 생산과 활용에 투입하는 자원을 산업현장에서의 실질적인 안전 관리에 필요한 시설·제도·인력 확보에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또 "동물실험에서 얻은 위해성 정보는 인체 위해성을 파악하는 목적으로는 쓸모가 없는 것"이라며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쥐 실험의 결과에 대해서 지금도 제조사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결국 화평법이 맹목적으로 요구하는 동물실험에 투입되는 비용은 무의미한 낭비에 불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학물질의 안전 관리는 산업현장의 설비·기술·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화관법의 획일화된 규정으로 모든 산업현장의 안전을 관리하겠다는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학회 측은 우려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안전은 시설·기술·투자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지, 환경부에 정보를 등록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지나치게 경직된 규제 환경에서는 안전을 위한 기업의 능동적인 노력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윤식 서울학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규제가 기술혁신을 촉진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산업을 붕괴시켜버릴 수도 있다"며 "화평법·화관법은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시장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정밀화학 산업의 특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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