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관 5명 중 4명이 '정서적 탈진(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균 교수팀은 지난 10월 24일부터 이달 7일까지 경기도 역학조사관 20명을 심층 인터뷰 및 설문한 결과, 이들의 '정서적 고갈'의 평균값은 4.31점으로 조사 인원의 80% 가량인 16명이 기준(3.2점) 이상의 정서적 탈진 상태를 보였다고 26일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조사관 중에는 한 달 근무시간이 100시간이 넘는 이들도 있었다.
또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한 경우, 오전 4~5시에 귀가해 오전 7시에 출근하는 초과 근무도 잦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관 중에는 24시간 긴장 상태가 유지돼 꿈 속에서도 역학조사를 하거나 운전 중에도 업무 관련 생각을 하다 교통사고가 난 이들도 있었다.
유 교수팀이 외상후울분장애(PTED) 문항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인터뷰에 참여한 조사관들의 울분은 평균 2.04점으로 '지속적하는 울분 상태'를 보였다.
조사관 5명은 심각한 수준의 울분 상태를 보여 일반인들보다 울분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 조사관은 "4월 말에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끝날 줄 알았다"면서 "쉬어도 몸이 회복이 안 됐다"라고 토로했다. 다른 조사관은 "역학조사를 몸을 상해가면서 하는데 과연 도움이 될까. 경계하고는 있지만 계속 이런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GPS나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통해 접촉자를 분류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 교수는 "불 끄기 급급한 위기 대응에서 유연하고 장기적인 체제로 전환하려면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유 교수는 조사관을 비롯한 현장 방역 인력의 업무 강도 및 환경 개선, 조사관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 체계적인 인력 관리를 위한 권한과 자원의 의사결정 구조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유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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