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왜 그렇게 아이들을 때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말썽꾸러기 그 아이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서 언젠가 모임에 나왔는데 와락 품에 안기는 겁니다. 미안했다라고 에둘러 이야기는 했지만 마음이 짠합니다. 그 시대 훈육이 지금의 잣대로는 과도한 체벌인 것 맞지요. 어떤 아이는 여름 방학이 끝났는데도 등교를 안하고 며칠을 애태우다가 나타났습니다. 방학 기간 동안만 타면 된다고 해서 학비를 벌려고 원양어선을 탔는데, 배가 열흘이나 늦게 귀항했다는 거였지요." 교장으로서 30년 전, 20년 전 선생님들의 과거 고백을 듣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필자는 30여 년을 한전에서 근무하였고 공모제 마이스터고 교장으로 현재의 학교에 부임하게 되었다. 전원 취업을 목표로 하는 직업계고등학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들과 대화 중간중간 자주 듣는 어구가 있다. "교장 선생님, 솔직히 저희들 좀 답답하시죠?", "저희 쫀쫀합니다.", "교사들은 속이 좁아요.", "중학교 교사는 중학생, 고등학교 교사는 고등학생 딱 그 수준이에요."
또 이야기는 이어진다. "예전에 학교 앞에 배나무 밭이 큰 게 있었는데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아이들이 배 서리를 해서 먹는 일이 다반사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서리하던 학생이 현장에서 붙잡혔어요. 배밭 주인이 형사고소하고 손해 배상을 받겠다고 끝까지 세게 나오셨지요. 교내 대책회의가 열렸고 전 교직원이 모금을 해서 그 분께 위로금을 드리고 해결했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그런 사건에서도 의리 혹은 낭만이 좀 있었던 거지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그 시절 겨울이 되면 내복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보니까 한 학생이 내복을 안 입고 있는 눈치였어요. 추울 때는 따뜻하게 입어야 공부도 잘 되니 꼭 챙겨 입으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빙긋이 웃으면서 그 내복을 시골에 아버지께 갖다 드리려고 안 입고 보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아이가 보고 싶습니다."
필자가 학교에 와서 발견한 사실! 교사는 속이 좁아서 교직에 있는 거다. 세상의 큰일 들은 속이 넓은 정치가나 훌륭한 지도자들께 맡겨둔 채로 말이다. 속이 좁아야 교사를 잘한다. 30년을 그렇게 살고 은퇴가 코 앞인데도 취업 지도를 위해 일요일 날 단 한 명의 아이를 교무실에 불러 앉혀놓고 면접을 체크하는 선생님, 세 번 입사 시험에서 떨어져서 풀이 죽은 아이를 다시 불러 일대일 지도로 기어코 합격시킨 선생님, 흔들리는 버스에서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는 선생님. 말 못할 사정이 있는 위기 가정의 아이를 소리 소문 없이 따로 도와주는 선생님.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을 의지해서,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선생님의 애정으로 성장해간다. 적어도 필자가 만난 선생님들은 그러하다. 선생님의 그림자를 함부로 밟는 시대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결코 선생님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의 속은 깊어서 좁게 보일 뿐이다.
[장동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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