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들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해 세무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들이 세무 대리업무를 못하게 하는 개정 악법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헌법 질서 파괴하는 세무사법을 막아주세요."(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 시험에는 회계과목이 없는데 세무사 고유 업무인 회계업무까지 변호사가 하겠다고 합니다. 변호사 욕심이 하늘을 찌릅니다."(한국세무사회)
변호사와 세무사가 업무 영역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변호사가 납세자 장부작성 등 세무사의 세무 대리업무를 할 수 있는지를 놓고 국회 입법 경쟁이 붙붙었다. 당장 이번달 세무사법 개정안 3건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사에 들어갔다.
이와는 별도로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측이 변호사법을 고쳐 세무·변리·노무 대리업무 등을 변호사 관련 직무에 넣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며 두 전문가 집단 간 갈등이 폭발했다.
◇17년 묵은 갈등 재점화 왜?
지금 변호사·세무사 전쟁에는 두 개의 전선(戰線)이 있다. 첫번째 전선은 세무사법이다. 애당초 이번 갈등은 세무사법이 개정된 지난 2003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이전에는 변호사 자격을 따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부여 받았고 세무사로 등록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12월 세무사법이 개정되며 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세무사로 등록할 수 있고, 등록하지 않으면 세무 대리를 할 수 없게 됐다. 세무사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자동으로 자격을 부여받은 변호사들은 등록을 할 수 없어 세무 대리업무를 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잇따른 입지 축소에 변호사들은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한 세무사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헌법재판소는 2018년 4월 '세무사법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취지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세무사로 등록할 수 있는 근거법이 사라지면서 현재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변호사들은 물론 신규 세무사들은 기획재정부 예규로 관리번호를 받아 임시로 등록해 세무 대리활동을 하는 '어설픈' 방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국회 입법전쟁 시작
법 공백 상태를 메우기 위해 이번 국회에서는 3건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발의된 법안도 모두 변호사·세무사 전쟁 연장선상에 있다.
변호사와 세무사가 업무 영역을 놓고 정면 충돌한 가운데 이번달 세무사법 개정안 3건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사에 들어갔다. [매경DB]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은 세무사 측 손을 들어줬다. 3개월의 실무교육을 받은 변호사를 대상으로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하되 장부작성, 성실신고 확인 등 세무사들이 강력히 '영토 수호' 의지를 밝힌 일부 업무는 하지 못하게 하는게 골자다.양정숙 무소속 의원·전주혜 국민이힘 의원안은 변호사 측 목소리를 반영한다. 양정숙 의원안은 세무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에게 세무 대리업무를 제한없이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고, 전주혜 의원안은 세무사 자격이 있는 변호사가 실무교육을 이수하면 장부작성 대행·성실신고 확인을 포함한 세무대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장외에서 벌어졌던 두 집단간 전투가 국회로 옮아간 모양새다.
◇변호사법 개정에 상태 더 악화
두 집단간 두번째 전선은 변호사법이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대한특허변호사회는 변호사 직무범위에 세무, 노무, 등기 대리와 특허 업무를 포함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의결했다. 변호사 자격만 있으면 세무, 노무, 등기 대리와 특허 등 전문자격 취득자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세무사회, 대한변리사회, 한국공인노무사회 등 6개 전문자격사단체는 지난 5일 변호사법 개정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공동 대처할 전문자격사단체 협의회까지 출범했다.
두개 전선에 대한 대한변협과 세무사회 입장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대한변협은 세무대리 업무가 원래 변호사 업무였다고 주장한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과거부터 변호사가 세무 대리업무를 했는데, 추가로 세무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도 업무를 보도록 해줬다"며 "헌재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는데도, 국회에서 재차 위헌적인 세무사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세무대리 활동을 하면 세법 해석, 적용 전문성을 바탕으로 납세자 재산권과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세무사 측은 "회계 업무는 법령해석과 전혀 다르다"며 "세무대리 업무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검증받지 않은 변호사에게 회계업무인 회계 장부작성, 성실신고 확인 등 업무를 허용하는 것은 전문 자격사제도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고은경 한국세무사회 부회장은 "시대 흐름에 따라 세무, 노무, 변리 등 전문 자격제도가 변화하고 전문화하고 있는데 변호사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두 집단이 감정싸움을 내려놓고 오로지 국민 편익을 잣대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필상 국세행정개혁위원장(전 고려대 총장)은 "전문가 집단이 개별 이익을 두고 경쟁할 게 아니다"며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국민 편익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뭔지를 기준 삼아 법제를 마련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환 기자 /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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