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개발 소식에도 불구하고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가 다시 빠르게 퍼지자 '증시 상승론' 불을 지폈던 월가가 다시 회색빛 전망을 냈다. 지난 주 이후 손 마사요시(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 등 글로벌 시장 큰 손 투자자들이 최소한 연말에 최악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의 연장선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사태에 따른 여행 산업 등 컨택트 부문 타격이 생각보다 오래가면서 저소득층 피해 쏠림이 커지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부각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20일(현지시간) JP모건은 '2021년 전망' 메모를 통해 "바이러스 재확산과 이에 따른 방역 규제 여파로 내년 1분기(1~3월)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될 것"이라고 밝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월스트리트 대형 투자은행(IB) 중 내년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언급한 것은 JP모건이 처음이다. 최근 월가 전문가들은 내년 1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입장을 내왔다. 불과 열흘 정도 전인 지난 9일 JP모건도 투자 고객 메모에서 "시장이 각종 리스크로부터 '열반'(nirnana·해탈의 경지)에 이를 것이며 내년 초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가 지금보다 11%더 오른 4000에 달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친 바 있다.
다만 이번 메모에서 JP모건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겨울은 어둡고 우울할 것"이라면서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올해 4분기 미국 경제 가 2.8% 성장했다가 내년 1분기에는 -1%로 경제가 뒷걸음질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또 "최근 확진자 증가세는 지난 3∼7월 증가세를 가볍게 뛰어 넘고 있다"면서 "특히 오는 추수감사절(11월 26일)부터 새해 첫날로 이어지는 연말 연휴 시즌에 코로나19 환자가 눈에 띄게 늘어날 수 있으며 내년에도 바이러스가 경제를 지배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 내년 2분기 이후부터는 회복세가 눈에 띌 것이라는 전망도 따랐다. JP모건 전문가들은 이날 메모에서 "내년 2분기부터 회복 랠리가 시작돼 해당 분기 미국 경제가 4.5%성장할 것이며, 3분기에는 6.5%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추정은 내년 1분기 말인 3월께 1조 달러 규모(약 1117조원) 재정 부양책이 나오고 이를 즈음해 백신 대중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런 관점은 지난 주 손 마사요시 회장과 빌 애크먼 회장 등 금융 시장 주요 인사들이 언급한 연말 비관론과 비슷한 맥락이다. 앞서 17일 열린 딜북 콘퍼런스에서 소프트뱅크의 손 회장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단기적으로 지금 나는 비관주의자"라면서 "앞으로 두세 달 안에 어떤 재난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위기 때는 현금이 필요한 만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계획(400억 달러)보다 많은 800억 달러어치 자산을 매각했다"고 한 바 있다. 이어 '리틀 버핏'으로 불리는 월가 투자 거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은 19일 열린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에서 "우리가 보기에는 매일 매일이 2001년 9·11테러 때 같다"면서 "내년 증시는 낙관적으로 보지만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상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올해 남은 두 달이 매우 힘들고 비극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IMF "하루 2000원으로 먹고 사는 빈곤층 올해 9000만명 더 늘고 G-20 정부 부채 작년보다 16%p↑
단기 부정론을 넘어 글로벌 경제가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비관적이라는 목소리도 최근 나오고 있다. 우선 IMF는 중장기적으로 여행 등 컨택트 부문과 저소득층에 '피해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서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부채만 급증해 앞으로 이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지난 19일 IMF는 '주요 20개국(G-20) 감시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는 글로벌 경제 생산 잠재력을 떨어트리고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해 인적 자본을 잠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IMF는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 경제 후퇴의 밑바닥에 '손실의 불평등한 배분'이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IMF는 "미국 달러 기준으로 하루에 1.90달러(약 2122원) 미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올해 9000만명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 "여행과 소매 판매점, 접대, 돌봄 서비스업 등 이른바 컨택트 분야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취약하기 때문에 장기 실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도 같은 날 "올해 전세계 경제가 -4.4% 역성장하고 내년에는 부분적인 회복세에 따라 5.2%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보면서도 "특히 글로벌 관광 산업 부문에서만 1억20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되는 등 실업 위기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지원 중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17일 딜북 컨퍼런스에서 "백신이 나와도 여행은 이전 같지 못할 것"이라면서 "특히 비즈니스 목적의 여행이 50%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항공 운송협회에 따르면 비즈니스 목적의 여행은 미국 항공사 매출 50%를 차지한다.
한편 IMF는 해당 부문 노동자들이 임시직 등 형태로 고용된 비공식 노동자이고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경우 '급여·노하우 손실' 뿐 아니라 이들 자녀가 코로나 사태에 따른 학교 폐쇄로 급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교육 받을 기회를 잃는 식의 '상처'가 남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나라 재정의 경우 G-20국가만 해도 올해 정부 부채가 지난 해보다 16%포인트(G20내 신흥국은 6%포인트)늘어날 것인 바 민간부문 회사채와 비금융부문 가계 부채도 역사적인 수준에 이를 것"이라면서 "지금은 정부 대출 지원 이뤄지고 있지만 민간·공공 부채 부담은 차입 비용을 높여 미래 경제 성장을 위한 투자를 줄이게 만드는 부작용이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은 대출 지원으로 연명하며 파산은 피한 이른 바 한계 기업들이 내년 이후 제대로 정상화될 지 여부도 리스크 요인이다.
멕시코와 중남미 신흥시장은 '백신 사용 불평등'과 실업 따른 사회 불만 재부각 가능성
또 다른 문제는 '의료 불평등' 에 따른 사회 혼란 가능성이다. 세계보건기구(WHO)등에 따르면 이른바 개발도상국의 경우 코로나19 위기 속에 암이나 당뇨, 백혈병 같은 만성 중증 질환 부문 지원이 코로나19 대응에 밀려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흥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멕시코가 대표적이다. 지난 해 말 불평등 문제로 '냄비 시위'(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냄비를 두드리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중남미 특유의 시위 문화)가 벌어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잠잠해진 중남미 주요 국가들에서도 바이러스 유행에 따른 실업·빈곤 심화와 백신 사용 가능성을 둘러싼 시민 불만이 겹쳐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재 칠레와 페루, 브라질, 콜롬비아 등 남미 주요국에서는 시민들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5월, 통산 아홉번째 기술적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맞았던 '신흥국' 아르헨티나와 또 다른 남미국가 에콰도르 등은 국가 부도 위기가 점쳐졌다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부채 탕감 움직임에 힘입어 최악을 피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정상화 과제가 쌓여있다.
[김인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