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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센 커브의 비밀, 눈은 아는데 몸이 못 따라간다 [정철우의 애플베이스볼]
입력 2020-11-17 07:59  | 수정 2020-11-17 09:58
플렉센은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열쇠를 쥐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두산 외국인 투수 플렉센은 이번 한국시리즈의 키 플레이어다. 플렉센이 나오는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하고 언제든 불펜 투수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만큼 그가 완벽한 공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렉센은 처음부터 강력한 투수는 아니었다. 빼어난 구위를 갖고는 있었지만 잘 활용하지 못하는 투수였다.
그의 6월 평균자책점은 4.71, 7월 평균자책점은 5.25에 불과했다. 그러나 8월을 기점으로 플렉센은 변하기 시작한다. 부상으로 한달 넘게 결장한 뒤 돌아온 플렉센은 9월 평균자책점 3.86, 10월 평균자책점 0.85를 기록한다. 시간이 지난 수록 언터처블이 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상승세는 포스트시즌에도 이어지고 있다. 준플레이오프서 팀에 승리를 안긴 데 이어 플레이오프서는 1승1세이브를 거두며 두산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상대적으로 불펜이 약하다는 단점도 플렉센이 있어 메꿀 수 있었다.
플렉센의 가장 큰 무기는 강력한 패스트볼이다. 150km를 훌쩍 뛰어넘는 하이 패스트볼은 타자들의 방망이를 이끌어내면서도 좀처럼 정타를 허용하지 않는 위력적인 무기다.
하지만 빠른 공 만으로 타자들을 제압할 순 없다. 빠른 공을 더욱 위력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변화구가 뒤를 받혀줘야 한다. 플렉센에게는 커브가 있다. 각도 큰 커브는 그의 하이 패스트볼과 짝을 이뤄 타자들의 방망이를 현혹시킨다.
부상 전.후의 커브 위력을 살펴보면 플렉센의 커브가 얼마나 위력적으로 변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플렉센의 커브 구사율은 부상 전.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커브의 효용성은 큰 차이를 보였다.
피안타율은 0.265에서 0.136으로 0.130 가까이 낮아졌다. 피OPS는 0.639에서 0.361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커브가 거의 언터쳐블의 변화구로 업그레이드 됐음을 뜻한다.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플렉센 커브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스트라이크가 되는 비율로 나타낼 수 있다. 일단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떨어지는 비율이 높아졌다. 존 안쪽 투구 비율이 30%에서 37%로 늘어났다. 여기에 존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공에 대한 헛스윙 비율이 늘어났다.
플렉센의 커브에 타자들이 많이 당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는 수치다. 전체 커브 투구 중 헛스윙하는 비율이 11%에서 23%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갑자기 타자들이 플렉센의 커브를 손도 대지 못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커브가 스트라이크가 되는 비율이 40%에서 70%로 크게 높아졌다. 강한 타구 비율은 같았고 땅볼 유도율은 줄었지만 헛스윙을 하거나 빗맞은 타구를 만들어내는 비율은 드라마틱하게 높아졌다. 그 사이 플렉센의 커브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흥미로운 것은 플렉센의 커브 궤적은 특별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LG 마무리 고우석의 경우 슬라이더의 피치 터널이 패스트볼과 거의 일정하게 이뤄지며 위력을 더했던 케이스였다.
그러나 플렉센의 커브는 일단 타자들의 눈에 패스트볼과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궤적을 그렸다. 일단 손에서 떠나는 순간 ‘뽕~하고 떠오르는 궤적을 그린 뒤 떨어지기 시작했다. 패스트볼 보다 높이 보이는 공은 일단 커브라는 것을 알 수 있음을 뜻한다.
A팀 타격 코치는 플렉센의 커브는 던진다는 걸 미리 알 수 있다. 패스트볼 보다 높은 궤적에서 출발하면 커브다. 타자들도 다 안다. 하지만 대처가 제대로 안된다. 그래서 더 위력적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커브의 궤적에 따른 패스트볼과의 피치 터널을 한 번 살펴 보았다. 떨어지는 각도의 크기와 상관 없이 공이 처음 시작될 때는 패스트볼과 커브가 확실히 구분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분명 커브가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어지간한 눈썰미라면 눈치챌 수 있다.
그렇다면 플렉센의 커브는 왜 알고도 못 치는 것일까. 정답은 떨어지는 낙폭과 회전수에 있다.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은 비교적 비슷한 위치에서 출발하는 패스트볼과 커브의 궤적을 비교했을 때, 플렉센의 패스트볼과 커브는 투구 후 약 12m 지점에서 평균 약 41.8cm의 무브먼트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플렉센의 패스트볼과 커브는 스트라이크 존에 이르러 평균 약 79.0cm에 달하는 무브먼트 차이를 보인다. 타자의 신체 조건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지만 통상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 높이가 약 70cm 정도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서 하단까지의 차이에 육박하는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가장 낮은 스트라이크 존까지 낙폭이 이뤄진다. 타자의 시선을 위.아래로 크게 흐트러트릴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플렉센은 150km가 넘는 공을 하이 패스트볼 존으로 찔러 넣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공을 높게 보고 대처해야 칠 수 있다. 시선이 높게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크게 떨어지는 공은 눈으로만 쫓기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은 2020시즌 플렉센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약 146.8km에 육박하며, 150km를 넘는 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커브는 평균 약 125.4km로 패스트볼과 약 20km 차이가 난다. 20km의 구속 차와 약 80cm에 이르는 무브먼트 차가 던지는 순간에 커브임을 확인하기 쉬움에도 타자들이 플렉센의 커브를 쉽게 공략하지 못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한 2020시즌 플렉센 커브의 평균 회전수는 약 2837rpm으로 KBO리그에서도 최상위권의 회전수를 보여주고 있다. 움직임을 크게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플렉센의 커브는 알고도 치기 힘든 위력을 지니고 있다. 타자의 시선을 크게 흔들 수 있는 낙폭과 많은 회전이 가져다 주는 변화의 크기가 타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연 NC 타자들은 플렉센의 커브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까. 그 숙제를 풀지 못한다면 한국시리즈를 풀어가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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