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단독] 文정부가 잊은 `G20 서울정상회의` 10주년…美싱크탱크 "10년 지난 韓정부, 느릿한 재배자 돼"
입력 2020-11-16 14:57  | 수정 2020-11-17 15:36
2010년 11월 11일 서울 하늘 아래 모인 세계 정상들이 삼성동 코엑스에서 G20 정상회의를 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매경DB]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을 목표로 공공일자리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을 이뤘지만, 잘못된 노동시장 관행을 개혁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작업은 하지(Moon did little) 않았다."
이른바 '빼빼로 데이'로 불렸던 지난 11일. 지금은 한국인 대다수가 기억하지 않는 이벤트가 10년 전 이날 서울 하늘 아래에서 벌어졌다. 2010년 11월 11~12일까지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정작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이를 평가하는 기념행사를 준비하지 않은 반면,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10년 서울 정상회의 개최 10주년을 잊지 않고 회고하며 10년만에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걱정하는 애정의 글을 올렸다.
작성자는 에반 렘스타드 CSIS 한국 담당 선임 연구원(비상주)으로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한국 특파원(2006~2013년)을 지낸 지한파 인사다. 그는 당시 서울에서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를 취재하며 G7 회원국이 아닌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G20 정상회의를 주최한 한국의 역량을 긍정 평가했다.
2010 서울 G20 정상회의에는 G7(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캐나다)·신흥국 12개국(한국·중국·인도·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브라질·멕시코·러시아·터키·호주·남아공·사우디아라비아)·유럽연합(EU) 정상들이 총출동해 아시아의 호랑이인 한국 경제의 위상을 실감했다.

워낙 많은 해외정상들이 몰려오다보니 대규모 교통 통제로 시민 불편도 컸지만 각국 정상이 한국경제의 성공을 보여주는 서울을 직접 목격하고 찬사를 보낸 사건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 칸 나오토 일본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맘모한 싱 인도 총리,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총리,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 리센룽 싱가폴 총리,반기문 UN사무총장, 로버트 브루스 졸릭 세계은행 총재, 호세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 등 글로벌 리더들이 빠짐없이 한국을 찾았다.
렘스타드는 서울 정상회의 때 경제 강국으로서 면모를 드러냈던 한국 정부가 개최 10년을 맞은 지금 경제의 성장동력을 잃는 '느릿한 재배자(Slow Grower)'가 됐다고 아쉬워하며 빌 게이츠의 명언("사람들은 앞으로 2년 동안 일어날 변화는 과대평가하고, 10년 동안 일어날 변화는 과소평가한다")을 환기시켰다.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도 경제 관료들이 한국 경제의 성장 저력 이면에 저출산·고령화, 수출의존형 경제라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10년 뒤 오늘의 현실을 볼 때 한국 경제는 적절한 대안책을 찾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역으로 그는 BTS가 세계 음원 차트를 휩쓸거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석권하고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에 성공해 글로벌 방역 선도국으로 부상한 것 역시 당시 다른 국가들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과소평가 사례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WSJ 기자 출신 답게 그는 왜 10년 동안 한국의 리더들이 성장동력의 약화 가능성을 잘 알고도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수출 의존형 국가로써 그간 한국이 중국과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실리를 추구하는 이익조정에 비교적 성공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경제 개혁 부문에서는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리더십이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으로 이어지는 혼란상을 언급하며 이 문제가 지금까지도 한국 정부에 소용돌이를 만들고(vex) 있다고 말했다.
현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2017년 당선 시 내걸었던 '소득주도 성장(Income-led Growth)' 전략으로 정부의 새로운 경제적 역할을 제시하고 공공부문의 더 많은 일자리 창출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감내해낼 고용주 입장에서 생산성 향상 조치가 이뤄져야 함에도 문 대통령이 노동시장의 잘못된 문화적 관습과 노동유연성 확보를 위해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또한 16개월 뒤 있을 한국의 대통령 선거(2022년 3월)에서 과연 어떤 새 리더가 한국의 성장 동력을 다시 끌어올릴지 여부에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을 주창하는 한국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중 지지도에서 상위를 달리고 있음을 언급하며 "한국 경제의 개혁 과제 테이블에는 (10년 전 논의됐던) 민영화와 이민개혁 과제 등이 남아 있지 않다. 남은 것이라고는 서울을 애워싸고 있는 경기도에서 1350만명의 도민들을 상대로 진행되고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전후 맥락 상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확충에 도움이 될 개혁과제는 더이상 논의되지 않고, 막대한 재정 소요 등 정책 리스크가 큰 이슈로 인해 마치 실험실의 개구리처럼 느릿해진 한국경제가 실험대 위에 올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만큼 경제회복이 (상대적으로) 빠를 수 있지만 느린 성장구조에서 살아가야 하는 '근본적 도전'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상화한 정치적 분열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1990년 후반 이후 세 차례의 경제위기(1997년 외환위기·2003년 카드채 대란·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사회적 결속력을 보여줬음을 높이 평가하며 거듭 한국 경제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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