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공수처장 안달복달하는 與 `정권 활용` 유혹부터 떨쳐라
입력 2020-11-16 09:13  | 수정 2020-11-23 09:36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 추천을 놓고 여야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중 후보 추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수처법을 개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공수처 출범 법정시한(7월15일)이 4개월이나 지난 만큼 후보 압축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종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왜 졸속 납기일에 맞추려 하냐"며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정기관의 수장을 뽑아야 하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고 신중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여야 추천을 받은 공수처장 후보는 모두 10여명이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성, 도덕성, 수임사건 내역 등을 놓고 여야 의견이 충돌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천할 최종 후보 2명은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별다른 흠결이 없는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김경수 변호사(전 고검장) 등 3명이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달중 공수처장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못하면 대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미 국민의힘 추천위원 2명이 동의하지 않아도 최종 후보를 선정할 수 있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여러개 발의한 상태다.
여당이 이처럼 공수처장 추천에 안달복달하는 것은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과 라임사태의 여권 로비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내년까지 계속될 경우 정책 실정과 맞물려 민심 이반이 가속화하면서 두 선거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게 여권의 판단이다.
더구나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고 당헌까지 개정해 두 선거 후보를 공천해야 하는 여당으로선 2022년 대통령선거의 시금석이 될 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공산이 크다.
특히 정권의 주요 국정과제인 월성1호기 수사의 경우 진행 결과에 따라 대통령의 레임덕마저 빚어질 수 있는 메가톤급 사안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검찰 수사를 겨냥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분명히 경고한다. 선을 넘지 말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 로드맵대로 공수처가 연내 출범하면 월성 1호기와 라임사태 등에 대한 검찰수사를 공수처가 바로 넘겨받아 자체 조사에 나설 수 있다.
즉, 여당 입맛에 맞게 공수처의 수사 강도와 범위를 조율함으로써 두 선거에 미칠 역풍을 차단하고 정권의 권력누수까지 막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 추미애 법무장관이 지시한 '휴대전화 비밀번호 자백법'이 굳이 없더라도,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검사장 등 현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검찰 간부들에 대해 공수처가 '수사·기소'라는 막강한 칼날을 휘두를 가능성이 크다.
한동훈 검사장이 우려한 것처럼, 여권이 권력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을 위해 헌법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마저 마음대로 내다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수처가 이런 무소불위의 '괴물 사정기관'으로 군림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공수처장 후보의 자질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소신과 용기가 있는지, 당파적 편향에서 벗어나 확고한 정치적 중립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는 중요한 공수처를 헐레벌떡 납기일에 맞추려고 '날림 검증'이나 '졸속 검증'을 해선 안될 일이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검찰개혁의 출발선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고 했다.
정치검찰로부터 벗어나는 게 검찰개혁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공수처도 다르지 않다. 공수처의 생명은 정치적 중립이다.
문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력이 수사기관을 정권의 목적에서 활용하려는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고 정권의 눈치에서 벗어나도록 해줘야 수사기관이 본연의 제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공수처의 참모습이다.
권력이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공수처를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여당이 스스로 만든 법을 서둘러 처리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유혹에 빠져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에서 "지상에서 가장 큰 죄는 권력을 남용할 지위와 수단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른다"고 했다.
여권이 과거 검찰·경찰처럼 공수처를 자신들의 수족으로 삼으려 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공수처는 권력에 당당히 맞서는 '포청천'이 돼야 한다. 그래야 법치와 정의를 수호하는 독립적인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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