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대선 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8일부터 11일(현지시간)까지 나흘 간의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강 장관이 바이든 캠프측 인사와의 접촉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러한 움직임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외교 결례'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명을 곧 다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만나러 오는 데 대한 바이든 캠프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묘한 시기 섣부르게 출장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외교부는 지난 5일 트럼프 행정부와의 조율을 마친 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9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가진다"고 발표했다. 외교부는 강 장관의 방미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초청으로 이뤄졌으며 지난달로 추진됐다 취소된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 대신 잡힌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아닌 강 장관의 방미라는 형식으로 재추진된 게 오히려 '악수'가 됐다는 게 외교가의 전반적 평가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정권 교체기'에 한국 외교 수장이 방문하게 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 "이번 선거는 전혀 끝나지 않았다"며 불복 의사를 표현해 더 난감해진 상황이다.
강 장관은 방미 기간 크리스 쿤스 민주당 델라웨어주 상원의원, 미셸 플러노이 웨스트이그젝 어드바이저스 전략자문회사 설립자 등을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후보의 최측근인 쿤스 의원은 차기 국무장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을 지낸 플러노이 설립자는 차기 국방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측에서 보면 자신의 초청으로 방미한 인사가 '선거 불복종 운동'의 대상인 상대 후보측 인물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이 달갑게 보일 리 없다. 한 외교 소식통은 "지난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을 때 한 고위인사가 트럼프측을 미리 접촉하려 하자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대통령은 1명이다'라며 제지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며 "현 정권과 차기 정권 간 기싸움은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바이든 캠프 측에서도 이미 '시한부'가 된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을 우리 정부에서 활발하게 접촉하는 모습을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우려다. 청와대와 외교부에서는 최근 △강 장관 방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방한(11월 중)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방한(연내) 등의 일정을 조율했다. 각종 여론조사상 바이든 후보가 이길 것이 유력했던 상황에서 갑자기 기존 행정부 관료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실무협상 중시' 기조를 밝힌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미북 협상의 모멘텀이 상실될 것을 우려한 청와대가 트럼프 행정부와 마지막 미북 접촉을 준비하려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추가 합의를 맺고 물러난다면 이는 차기 정권의 대북정책에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든 캠프측이 원하는 움직임이 아닐 것이란 평가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아직 확실히 차기 백악관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외교부 장관이 방문하기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며 "자칫 양쪽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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