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이젠 무지하면 폭망" 무주택·1주택자도 살얼음판
입력 2020-11-06 15:06  | 수정 2020-11-06 15:07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아파트 전경. [매경DB]

"전세 계약이 만료돼 최근에 난생 처음으로 집을 샀는데 입주까지 시간이 남아 부모님 집에 잠시 얹혀 살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부모님이 2주택자 됐다며 취득세 8% 내라고 하네요. 첫 집을 구매한 것인데 이게 말이 되나요?" (서울 하계동 아파트 매수자 30대 김 모씨)
"마트 계산원, 시간 강사, 식당일 병행해 가며 힘들게 살다 생애 첫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어요. 내 가족 편히 누울 자리 하나 얻었다는 생각에 기뻤는데, 반 평도 안되는 아파트(지분)를 19일 보유했다는 이유로 부적격이라니요." (부산 아파트 청약 부적격 통보 50대 A씨)
시장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가 강력한 정책 기조를 이어가면서 부동산 규제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부동산 투자자들이 낭패를 보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부동산 규제는 주로 다주택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무주택자와 예비 1주택자들도 '규제에 무지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규제도 좋지만 정부가 선의의 피해를 보는 주택 수요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규정으로 생애 첫 주택을 마련한 이들 중에서 위장전입을 안해 뜻밖의 피해를 입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첫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모님 집에 같이 산 경우가 해당된다. 주민등록 체계상 '1세대의 주택수'는 세대주(부모)와 세대원(자식) 모두를 같이 넣어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1주택자인 경우, 세대원으로 있는 자식이 첫 집을 마련해도 '2주택자'로 분류된다. 정부는 지난 7·10 부동산 대책 때 2주택자에겐 8%, 3주택 이상은 12%로 높은 취득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서울 노원구 하계동 인근 아파트를 4억원대에 매수한 김 모씨도 최근 잔금 납부와 소유권 이전 등기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취득세를 8% 내야 한다는 사실을 통지 받았다. 그가 새로 매수한 주택에 실입주 하기 전 임시로 서울에 있는 장모집에 세대원으로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1세대'안에 장모가 이미 1주택자이기 때문에, 새로 취득하는 집은 '2주택'이 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잔금 처리일이 기준이라는 법무사의 조언을 받고 급한대로 세대분리 신청을 위해 인근 조그마한 공실을 알아보고 있다"며 "실질적으로는 생애 첫 구입인데 취득세 8%를 내는 것이 억울하다"고 밝혔다. 만 30세가 안된 사람들은 세대분리 요건조차 까다로워 부모가 1주택자라면 새로 집을 취득할 경우 소득요건(중위소득 40%·연 840만원)을 만족해야 한다.

부동산카페에선 "부모가 유주택자이고 자식이 세대원으로 있으면, 자식이 청약시 무주택이라고 보면서 집을 산다 하니 유주택자로 보는 것이냐"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각 관할구청에 '지방세 이의신청' 제도가 있는 만큼, 실질적인 1가구 1주택자라고 한다면 사실관계를 개별 건별로 소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부분 시민들은 복잡한 행정절차를 겪기 싫어해서 결국엔 '고시원' '원룸' 등 월세가 저렴한 곳에 단기임대를 들어가 세대분리를 하는 방법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청약 시장 과열에 따라 청약 부정 행위에 대한 제제도 철저하다. 청약 조건도 따져보지 않고 '묻지마 청약'을 했다가 당첨 기회를 날리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주택 지분 1%만 가지고 있더라도, 또 그 주택 가액이 낮더라도 1주택자로 보고 청약 기회를 박탈하는 규정이 있다. 이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본 부산의 50대 여성은 최근 청와대 청원까지 올렸다. 이 청원인은 '생애 첫 청약당첨 아파트 부적격 억울함을 호소합니다'라는 글에서 "배우자가 2019년 7월 부산 23평 주공아파트 100분의 1 지분을 19일간 소유했다는 이유로 첫 아파트 청약 당첨에서 부적격 처리됐다"며 "경제 파탄으로 2012년 배우자와 별거했고, 이 때문에 배우자의 주택 지분 보유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53조 단서5호에 의하면 20㎡는 주택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는데, 반 평(0.23평)도 안되는 지분을 1주택으로 본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국토부는 1평을 소유하든 하루를 보유하든 등기부등본에 이름만 올라가면 1주택으로 본다"며 "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데 법령이 그래서 어쩔수 없다는 답변만 한다"고 토로했다.
청약 부적격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해소해줄 마땅한 민원창구가 없는 것도 문제다. 분양 사업자인 시행사가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지만, 법령에 규정된 이상 재량권이 크지 않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법령을 완화해 주지 않는 이상 사실상 피해자 구제법이 마땅치 않다"며 "정부가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규정 정비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 상승세를 규제로 잡겠다 하더라도 주택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해선 안된다"며 "규제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섬세한 정책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현준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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