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춘재 "억울한 누명쓴 윤성여 씨와 죽은 피해자들에게 사죄"
입력 2020-11-02 17:46  | 수정 2020-11-09 18:04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을 자백한 이춘재(57)가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 윤성여(53)씨에게 사건 발생 32년 만에 사과했습니다.

오늘(2일) 이 사건 재심 재판이 열린 수원법원종합청사 501호 법정에서 이춘재는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형생활을 한 윤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춘재는 윤씨의 변호인 측이 1980년대 경기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 당시 윤씨를 포함해 범인으로 몰려 경찰서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다가 죽거나 다친 무고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뉴스 영상을 재생한 후 "할 말이 없느냐"고 묻자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춘재는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가서 (윤씨의) 앞으로의 삶이 더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저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과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 사죄드린다"며 "제가 이 자리에서 증언하는 것도 작은 위로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마음의 평안을 조금이라도 얻었으면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춘재는 또 "제가 저지른 일은 앞으로 없어질 수 없다"며 "모든 분에게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춘재를 코앞에 둔 윤씨는 착잡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자신을 '진범'이라고 자백한 이춘재와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윤씨의 만남은 문제의 8차 사건이 발생한 지 꼭 32년 만에 이뤄졌습니다.

두 사람은 당시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이었으나,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춘재가 1988년 9월 16일 집 인근에 사는 13세 여중생 박모 양을 성폭행한 후 살해한 8차 사건을 저지른 이후 윤씨의 운명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당시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체모 등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을 분석하는 기법) 분석 결과가 담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를 토대로 22세의 농기계 수리공이던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1989년 7월 검거했습니다.

윤씨는 경찰관들에 의해 임의동행 방식으로 경찰서로 온 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75시간가량 불법적으로 감금된 상태에서 폭행·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을 복역한 끝에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이춘재는 지난해 경찰 재수사 과정에서 8차 사건 피해자의 집 대문 위치, 방 구조 등을 그려가며 침입 경로를 구체적으로 말했고, 피해자를 살해한 수법에 대해서도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을 만한 내용 및 당시 현장 상황과 일치하는 진술을 했습니다.

피해자의 집은 과거 이춘재의 친구가 살던 곳이어서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던 이춘재가 범행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춘재는 여중생 강간살인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윤씨가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경찰에 붙잡히면서 유유히 수사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1994년 1월 처제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해 붙잡힐때까지 이춘재는 이후로도 5년가량을 더 연약한 여성을 상대로 끔찍한 살인 행각을 이어갔습니다.

이날 법정에 선 이춘재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씨와 처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에게 30여년 만에 사과하기는 했으나, 그가 저지른 14건의 살인(처제 살인 제외)과 30여건의 성범죄는 이미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 단죄가 불가능합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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