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부, WTO 사무총장 선거 대응 갈피 못 잡아…"미국이 후보 유지 원해 고민"
입력 2020-11-01 14:53  | 수정 2020-11-08 15:04

정부가 세계무역기구 WTO 사무총장 선거와 관련한 향후 대응 방향을 쉽게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당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회원국 다수 의견을 존중해 승복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지만, 한국이 선거에 남기를 바라는 미국의 의중을 무시할 수 없어 고민입니다.

오늘(1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WTO 일반이사회 의장이 회원국 선호도 조사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은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차기 사무총장으로 추천한 이후 정부 내에 유 본부장의 당선을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WTO 일반이사회 의장은 반대하는 회원국이 없으면 11월 9일 열리는 특별 일반이사회에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승인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유 본부장을 지지하며 회원국 중 사실상 유일하게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무총장 선출에는 모든 회원국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11월 9일 일반이사회에서 미국의 반대로 오콘조이웨알라 추천안이 부결되면서 사무총장이 당분간 공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회원국들이 미국에 동조하면 유 본부장이 당선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콘조이웨알라를 지지했던 유럽연합(EU) 등이 미국에 반발하고 있어 정부는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따라서 당초 정부에는 한국이 사무총장 공석 장기화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도록 승복 여부를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미국과 관계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정부가 유 본부장의 후보직 사퇴를 포함해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으나 미국의 입장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정부는 미국과 향후 대응 방안을 수시로 협의하고 있는데 미국은 유 본부장이 후보로 계속 뛰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이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WTO를 미국이 원하는 대로 바꾸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중론입니다.

사무총장 선출을 지연시키면서 WTO 쟁점 현안에서 EU, 중국 등 다른 회원국의 양보를 압박하는 게 목적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WTO가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 유지와 정부 보조금 등 '반칙'을 눈감아줬다고 주장했으며, 자국 입장을 관철시키고자 WTO 상소기구까지 무력화하면서 개혁을 촉구해왔습니다.

미국은 지난달 28일 미국무역대표부(USTR) 성명을 통해 유 본부장이 WTO 개혁 적임자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한국이 후보 사퇴를 통해 상황을 정리해주기를 바라는 다른 회원국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미국의 이런 입장을 고려해 승복 의사를 밝히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3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의 결과가 결국 정부 결정을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현 트럼프 행정부는 오콘조이웨알라 반대 입장을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일방주의 노선을 걷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르게 다자주의 협의 체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WTO 지도부는 미국이 오콘조이웨알라 찬성으로 돌아서기를 기대하면서 바이든 취임까지 사무총장 선출을 연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바이든 당선으로 등 떠밀리다시피 승복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보다는 대선 전에 확실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면, 사무총장 선출이 이미 정부 손을 떠나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미국 대선 결과가 우편투표 개표 지연과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가능성 등으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결정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외교 소식통은 "깨끗한 승복은 시기가 지난 것 같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려면 한국이 일부러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할 텐데 그 방법이 고민"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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