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운갑의 앵글 뒤편] 대권 잠룡 김경수의 '운명'
입력 2020-10-29 11:07  | 수정 2020-11-05 12:04
김경수 경남지사와의 대담 장면 / 사진 =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시사스페셜)
문재인 대통령이 이 순간 가장 마음 졸이며 지켜보고 있는 정치인은 누구일까?

기자는 김경수 경상남도 지사일 것으로 짐작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정권 출범하자마자 정치자금으로 곤욕을 치른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마음 아파하듯이 말이다.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날이 멀지 않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김 지사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드루킹 댓글 사건으로 법정을 드나들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법적 족쇄가 빨리 풀려야 도정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020년 9월 10일 경남 창원 집무실에서 만난 김 지사는 재판과 관련한 답변만큼은 신중했다. 오는 11월 6일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운명이 결정되는, 그의 모든 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김경수 지사를 주목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선이 1년 6개월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PK(부산·경남)의 상징, 친노 친문의 적자 등 정치적으로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재판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지켜봐야 할 주자라고 언급한 배경이기도 하다. 직접 물었다.

대권 주자로서 김 지사를 거론합니다. 법적 족쇄가 풀리면 대선 후보로 나서야 한다고들 하는데 어떤 입장입니까?”

경남에서 지금 지고 있는 짐도 충분히 무겁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답변에서 정치적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수도권만 있는 게 아니라 동남권과 같은 또 하나의 수도권이 만들어져야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가는, 국가적 미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도정에 집중한다는 맥락과 함께 대한민국의 발전, 국가적 미래를 강조했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주자가 나올 수 있다고도 하는데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국민들이 정치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당리당략을 놓고 싸우고 있는 지금의 정치 현실에 대해 이걸 좀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인, 이런 걸 해낼 수 있는 정치에 대한 요구가 높다는 거죠.”

현재의 대한민국 정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읽혔다.

정치권은 김경수 지사의 재판이 끝나야 여권의 대선 구도가 보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지사에 대한 친문 지지층의 호감도는 이낙연 대표, 이재명 지사 두 사람과는 결이 다르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 지사는 1995년 지방선거 실시이후 경남도에서 처음 나온 민주당 계열 도지사다. 그만큼 정치적 상징성도 크다.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경수 지사가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모습 / 사진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

김 지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의 핵심 인물이다.

한 가지 일화. 2011년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문재인 이사장은 야권 통합을 위한 ‘혁신과 통합에 적극 뛰어들었다.

이해찬 시민주권 상임대표, 김두관 경남도 지사,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함께한 시민운동 모임이다. 그때 김경수 노무현 재단 봉하사업부 본부장은 문 이사장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기자는 문재인 이사장을 주목했다. 2011년 말, 지근거리에 있는 양정철 전 비서관과 김경수 본부장에 연락했다. 문 이사장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봉하 마을에 한번 내려오시지요.”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말에 양 전 비서관이 힌트를 줬다. 카메라를 꾸려 봉하 마을로 향했다. 날씨가 쌀쌀해진 이른 오전이었다. 김경수 본부장이 기쁘게 맞이해 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문재인 이사장이 인터뷰를 거북해 했다. 당황스러웠다. 당시 양정철 김경수 두 사람은 문 이사장을 정치에 입문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던 때였다. 30여분 이상의 대담이라는 설명을 충분히 하지 못한 듯했다.

아이고 실장님, 제가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한 말씀 해주세요.” (노무현 정부 때 비서실장과 청와대 출입기자로 만난 인연으로 문 이사장을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문 이사장은 간곡한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건을 제시했다.

출마 등 개인의 정치에 관한 내용이 아닌 야권 통합, 즉 혁신과 통합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논의하자고 했다. 장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작고 아담했다. 나무 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풀어갔다.

2011년 12월 2일 문재인 이사장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에서 야권 통합과 검찰 개혁 의지를 밝히고 있다. / 사진 =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야권 통합에 대한 의지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문 이사장의 정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대담이었다.

인터뷰 직후 여기까지 왔는데, 점심 하고 가시지요.”라고 문 이사장이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 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 농가 식당으로 향했다. 문 이사장이 기자와 마주했고 김 본부장은 문 이사장 바로 오른 편에 앉았다. 막걸리를 곁들이는 식사였다. 한두 잔 마신 뒤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그런데 실장님, 정치하실 겁니까?”

문 이사장은 한 호흡 가다듬은 뒤,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떼었다.

네,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기자는 순간 김경수 본부장과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이 딱 마주쳤다. 식당 문을 나오자 김 본부장이 손을 덥석 잡았다.

이제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양정철 김경수 등 측근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문 이사장에게서 명쾌한 답을 듣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정치를 하겠다는, 그것도 기자 앞에서 처음 공식화한 자리가 된 셈이다.

그 이후 김경수 양정철 등 핵심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북 콘서트와 함께 이듬해인 2012년 총선, 대선 출마 등 숨 가쁘게 달려간다.

최근 청와대 핵심인사로부터 문 대통령과 김 지사와의 관계를 상징해 주는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정치를 하시면서 (대통령께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김 지사가 VIP 차에 동승한 뒤 내려오실 때 보면, 대통령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늘 밝게 변해 있습니다.”

여러 아이디어를 갖고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사라는 점을 방증해 주는 대목이다.

경남도청 내 도내 청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김경수 지사 집무실에도 같은 그림들을 작은 크기로 한 데 모아 만든 액자가 걸려 있다. / 사진 = 경남도청 제공

지사님 안녕하세요. 점심 드시러 가세요?”

지난 10일 인터뷰를 마치고 오찬 장소로 이동하던 길에 김 지사를 발견한 도민들이 인사를 했다. 차량의 속도를 늦추면서 창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우선 신기했다. 오랜 지인처럼 편안하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더욱 놀랐다.

인터뷰 후 대담 전문을 보면서 느낀 점이 하나 더 있다.

논리 전개에 흐트러짐이 없고 실질적인 대안 제시가 풍부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5년, 의정 활동, 행정 경험 등을 통해 많은 것을 축적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과 의지도 읽혔다.

문재인 정부의 아쉬운 점에 대해 묻자 그는 구조 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2년 뒤 대선 승리를 통해 문 정부의 정책 계승과 함께 못다 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한다는 의미로도 들렸다.

김경수 지사는 분명 자신만의 향기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적이 별로 없고 부드러운 리더십, 격의 없는 소통으로 따르는 이들이 많다.

오래전 문희상 전 국회의장에게 ‘대권으로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 한 가지를 꼽으면 무엇이냐고 묻자 사람이 모여야 합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김 지사 주변에는 분명 많은 이들이 어깨동무하며 서 있다.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에 희망을 담아 기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2018년 제조업혁신 비전선포식을 시작으로 7 차례 경남을 직접 찾아 김 지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정치인 김경수는 문재인 정부의 가치를 승화발전 시킬 수 있을 것인가?

2020년 10월, 김 지사에게는 가을철 풀벌레 울음소리보다는 째깍째깍 운명을 가를 시계 바늘 소리가 더욱 크고 선명하게 들려올 것이다.

[정운갑 앵커]
2001년부터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을 13년 여간 진행한 정 앵커가 2020년 9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기자 초년병 때부터 인물 탐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담 뒤의 속살을 앵글뒤편‘에 담고자 한다. MBN 정치부장, 산업증권부장, 시사기획부장, 수석논설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논설실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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