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옵티머스 후폭풍…은행 "펀드 안 맡겠다"
입력 2020-10-28 17:13  | 수정 2020-10-28 19:43
국내 A운용사는 최근 펀드 출시를 앞두고 투자자들로부터 자금 모집까지 완료했지만 출시 계획을 취소했다. 펀드 상품에 대해 수탁 업무를 받아주겠다는 은행을 찾지 못해서다. A사는 해외채권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구성해 자금 약 30억원을 모았지만 펀드 설정으로까지 잇지는 못했다.
5000억원대 펀드 환매 중단을 빚은 '옵티머스 사태' 여파가 은행의 수탁업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옵티머스 사태로 펀드 회사의 사기 행위와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감독기관의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옵티머스 수탁사였던 하나은행 직원이 피의자로 입건되고, 금융당국이 수탁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은행이 펀드의 신규 신탁 계약을 거부하면서 펀드가 설정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시중은행이 주로 담당하는 펀드 수탁업은 운용사와 신탁 계약을 맺은 은행 등 수탁자가 수탁자산을 보관하며 사무를 대신하고 일정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수탁자는 운용사 지시에 따라 매매대금을 결제하고, 환매 요청이 들어올 때 자금을 내보내기도 한다. 사모펀드 수탁업은 2015년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으며 사모펀드 시장 확대와 함께 급격히 성장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199조원이었던 사모펀드 총 수탁 규모는 올해 10월 기준 433조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은행의 수탁 업무는 수익성이 좋은 사업은 아니다. 은행이 운용사와 신탁 계약을 맺고 받는 연간 수탁보수율은 0.01~0.07%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수탁업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은 저위험·저수익이었다"면서 "최근 당국에서 수탁업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며 리스크는 높은데 수익은 적은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연이어 터진 펀드 사태와 관련해 '사모펀드 건전 운용을 위한 행정지도안'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수탁기관이 매월 1회 이상 사모펀드 운용사와 펀드의 자산 보유 내역을 비교해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증빙자료를 보관하도록 하는 등 수탁사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업계에서는 높아진 위험만큼 수탁 수수료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행정지도에 따르면 수탁사의 역할이 과거보다 커져 은행 입장에서는 인력과 시스템 보강이 불가피하다"며 "그에 비하면 보수 수준은 지나치게 낮아 이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게 공통적 의견"이라고 말했다.
당분간은 신규 신탁 계약을 최대한 미루겠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무리하게 부서(수탁)를 확대하기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두는 게 맞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산운용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투자를 집행하고 자산을 보관해줄 수탁사를 찾지 못하면서 신규 펀드 출시에 제동이 걸리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장외파생상품 등 구조가 복잡한 상품에 대해서는 대다수 은행이 수탁을 일절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유신 기자 / 문가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