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는 '신의 송곳니'라 일컬어진다. 머물고자 하는 인간에게 자연의 날카로운 이빨처럼 위협적이어서다. 극한 추위, 희박한 공기, 중력, 자외선 등 불친절한 자연과 다투어야 하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은 인간 한계 도전에 비견된다.
14좌를 모두 올라 '체육발전 유공자 포상'에서 5등급 중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이달 초 받은 산악인 김미곤 대장(48)은 "14좌 등정이 목표가 아니었다. 산이 좋아 가게 됐고 그래서 또 가다 14좌에 올랐을 뿐"이라며 웃었다.
경기 화성시 동탄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미곤 대장은 2000년 초오유(8201m·6위봉) 첫 등정 후 2007년 에베레스트(8848m·1위봉), 2018년 낭가파르바트(8125m·9위봉) 등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하며 한국인 중 7번째, 세계에선 41번째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대장님'답지 않게 선한 인상에 겸손한 말투였다.
"낭가파르바트는 아쉬움이 많던 곳이었어요. 2005년 낙석을 만나 실패했습니다. 재도전땐 대원 10명과 함께 편안한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칸첸중가(8586m·3위봉) 정상에 선 김미곤 대장. [사진 제공 = 김미곤 대장]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마나슬루(8163m·8위봉) 등정에 나선 2010년 윤치원·박행수 대원을 잃은 아픈 기억 때문이다. 7500m 지점에서 '얼어붙은' 박 대원 시신만 겨우 찾아 4000m 지점 베이스캠프까지 운구했다. 카트만두에서 시신을 화장했지만 김 대장은 유족 요청으로 정상을 등정해 영정사진을 묻고 돌아왔다."계속 파트너로 동행했을 후배들인데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히말라야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이제 산이 돼버린 사람들을 한 구 이상 봅니다. 시신이 표식인 봉우리도 있어요. 산이 위험하다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는 것이 더 무서운 거죠."
김미곤 대장이 히말라야 빙벽을 오르고 있다. [사진 제공 = 김미곤 대장]
고산 등정에서 육신의 한계는 시계처럼 정확히 찾아온다. 4000m에선 30~40 발걸음을 가다 쉬고 7000m 중반이 넘어가면 서너걸음 이상을 갈 수 없다."악천후 속에선 눈 앞의 내 손을 내 눈으로 볼 수 없고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아요. 올라온 높이를 아까워하다가는 큰 일 나요.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해야 역설적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어요."
인류 최로로 14좌에 오른 산악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의 '검은 고독 흰 고독'을 읽고 산에 빠졌다. "텐트 안에서 메스너가 '너무 외롭다'며 울던 장면을 기억한다. 대원과 상의는 하지만 결정은 대장은 혼자의 몫이어서 본질적으로 외롭다"고 했다. 김 대장은 2016년 방한했던 메스너와도 결국 만났다.
가장 오래 함께 한 세르파는 '싼누'다. 김 대장은 "2007년부터 계속 함께 등반했던 친구다. 본인도 함께 정상까지 오르고 싶다고 해서 항상 함께 오른다"며 세르파 싼누에게 "네 덕분에 14좌를 오를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했다. 싼누 본인도 14좌를 최근 전부 등정해 세계 42번째(추정)로 히말라야 14좌 완등 산악인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경기 화성시 동탄 사무실에서 만난 김미곤 대장. 한국도로공사 인재개발팀 소속인 김미곤 대장은 사무실 고정석으로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기도 하다. 앞에 놓인 검은 옷은 전문가용 방한 내의로 김 대장을 위해 특수제작됐다. [김유태 기자]
김미곤 대장이 개조한 벨트. 김 대장은 "원래 스노우보드 전문가용 벨트인데 가벼워서 2013년 등정엔 항상 착용했다"고 말했다. [김유태 기자]
히말라야에서 늘 함께였던 물건이 있을까. 그는 주황색 '스노보드용 벨트'를 꺼냈다."스노우보드 전문가용 벨트인데 가벼워서 직접 박음질해 개조했다"고 말했다. 벨트가 '생명줄'이라면 그 옆에 놓인 방한용 내의는 그의 또 다른 '피부'다. "2007년부터 특수제작된 내의를 입었어요. 곳곳이 낡았지만 제간 가장 중요한 보물입니다."
정상까진 아닐지라도 일반인도 히말라야를 '누릴' 방법은 있다. 김 대장은 아들 종윤(17)도 찾았던 안나푸르나 푼힐(Poonhill) 전망대를 권유했다. "푼힐 전망대는 3200m 지점에 있어 일반인도 히말라야를 가볼 수 있습니다."
종윤이 산악인의 길을 걷는다면 찬성하겠느냐는 질문에 김 대장은 "반대는 하겠지만 말리지 않겠다.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저 때문인지 산을 안 좋아하는 아내는 '엄마 죽으면 가라'고 할 것"이라고 밝게 웃었다. 딸 나윤(10)은 아직 어려 아빠가 히말라야에서 돌아와도 얼마나 위험한지 아직 모른단다.
김미곤 대장이 히말라야에 10회 이상 입은 방한용 내의의 겉면 패치에 `MI GON, KIM`과 `Hymalaya 14 peak` 문구가 선명하다. 곳곳이 낡았지만 "이만한 옷이 없다. 가장 아끼는 보물"이라고 김 대장은 털어놨다. 2007년부터 입은 옷이다. [김유태 기자]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K2(8611m·2위봉)를 겨울에 등정하는 산악사 최악의 난제에 도전할 계획이었다"는 그는 K2 일정을 내년으로 미뤘다. 극한 조건에도 왜 산에 갈까. 김 대장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고지에선 소화가 안 되니 눈 녹여 차 한 잔 겨우 삼키고 눈만 감아 텐트에서 시간을 견딥니다. 힘들어도 울지 않습니다. 다음날 새벽 정상에 서면 그제야 눈물이 나죠. 너무 좋아 흘리는 눈물, 그러니까 정상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러 가는 거예요."
김미곤 대장(가운데)이 대원들과 함께 낭가파르바트(8125m·9위봉)에서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김미곤 대장]
김미곤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등정 외에 남극도 다녀왔다. 뒤로 펼쳐진 설원이 무한하다. [사진 제공 = 김미곤 대장]
[동탄 = 김유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