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딸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28년 만에 생모가 나타나 억대 보험금과 유산을 받아 간 '제2의 구하라' 사건이 벌어졌다.
2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A씨(55)는 지난 4월 숨진 딸 김 모씨(29)의 계모와 이복동생을 상대로 딸의 체크카드와 계좌에서 사용된 5500여만원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서울동부지법에 냈다.
A씨는 지난해 위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던 김씨가 지난 2월 사망하자 김씨를 간병해오던 계모와 이복동생에게 돌연 연락해 '사망보험금을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김씨의 생모인 A씨는 김씨가 태어난 후 1년여를 제외하고는 연락조차 없이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김씨 사망 후 자신이 단독 상속자인 것을 알고 사망보험금과 퇴직금, 김씨가 살던 방의 전세금 등 1억5000만원을 가져갔다. 김씨의 직계존속인 A씨는 상속권 절반을 가진 김씨 친부가 수년 전 사망해 현행 민법에 따라 김씨가 남긴 재산 모두를 상속받을 수 있다.
A씨는 김씨가 사망한 이후 계모와 이복동생이 김씨의 계좌에서 결제한 병원 치료비와 장례비 등 5000만원 상당이 자신의 재산이고, 이를 부당하게 편취당했다며 소송까지 걸었다.
김씨의 계모 측은 "일도 그만두고 병간호에 매달렸는데 갑자기 절도범으로 몰린 상황"이라며 법정에서 억울함을 주장했다.
유족에 따르면 김씨는 암 판정을 받은 뒤 "재산이 친모에게 상속될까 봐 걱정된다", "보험금·퇴직금은 지금 가족들에게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변인들에게 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공증받은 유언이 아니라 효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사정을 안 법원도 이례적으로 두 차례 조정기일을 열었고, A씨가 유족에게 전세보증금 일부인 1000만원 미만의 돈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후 재판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유족 측 변호를 맡은 장영설 변호사는 "현행법에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부모를 상속에서 배제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며 "유족이 패소하거나, 도의적 책임을 적용해 합의를 보는 선에서 끝나는 사건이 많다"고 말했다.
앞서 가수 고 구하라 씨의 오빠 측은 어린 구씨를 버리고 가출했던 친모가 구씨의 상속재산을 받아 가려 한다며 이른바 '구하라법' 제정 입법 청원을 했다.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됐으나,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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