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20분 완판신화 `도착지 없는 비행`…직접 해봤습니다
입력 2020-10-24 15:01  | 수정 2020-10-24 15:40
하늘에서 내려다 본 한라산 백록담. 날씨가 좋아 선명하게 보인다.


"그걸 왜 타?"
와이프의 첫 반응은 이랬다. 그럴만도 했다. 도착지? 없다. 심지어 비행기 당일치기. 그것도 인천국제공항 이륙인데 국내 상공만 돈다. 기내식만 먹고 내리는 '생뚱맞은' 국내 하늘 한바퀴. 그런데, 난리가 났다. 아시아나항공이 선보인 'A380 한반도 일주비행'은, 퍼스트 비즈니스석이 딱 20분 만에 거짓말처럼 다 팔려버렸다. '코로나19 시대'에 기적같은 일이다. 그래서, 나섰다. 20분 완판신화, 직접 체험해 봤다. '여행하는 척' 해보는, 말도 안되는 '2시간짜리 비행 체험기'인 셈이다.
한반도 상공을 한바퀴 돌고 내리는 `척(여행하는 척) 트립` 티켓.

▷ 몸값 4000억 A380 콧대를 확 낮춘 까닭이...
기자는 안다. 하늘 한바퀴 돌고 내릴 뿐인, '생뚱맞은' 도착지 없는 여행이 완판된 비밀. 단순히 코로나로 인한 '보복성 소비심리'로는 설명이 안된다. 물론 갑갑함을 떨치려는 보복심리가 작용했을 수는 있다. 가장 큰 완판의 비밀은 바로 A380 비행기 기종 때문이다.
A380은 하늘 위의 '마이바흐'다. 몸값만 4000억원 수준. 구조는 2층 버스같은 복층형이다. 날개 길이는 축구장 68m보다 5m가 더 길다. 날개 위에는 마티즈 70대가 올라가니 말 다했다. 무게는 가장 무겁고 크다는 향유고래(43.5t) 12마리를 합친 560t. 그런데도 속도는 마하 0.96를 찍는다. 한마디로 날아다니는 괴물.
복층형 구조인 A380. [사진 제공 = 아시아나항공]
기자는 A380과 연이 깊다. 국내 항공사들이 최초로 이 기종을 들여오기 직전인 2009년. 국내 언론 최초로 탑승을 하고 체험기를 썼다. 당시 기자가 탔던 A380은 에미레이트 항공이 운영했던 기종. 명품 샴페인 샤또마고까지 없는 게 없었던 미니바에 담소까지 나눌 수 있는 바라운지까지 있었다. 당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기내 2층에 있던 샤워 스파시설. 1만 피트 상공에서 온수로 샤워까지 했다.
이 연이 돌고돌아 2020년 10월, 마침내 코로나19 뉴노멀 비행으로 뜬 '도착지 없는 하늘 여행'으로까지 이어진 거다. 참으로 따끈따끈하면서 질긴 연이다.
2시간 남짓, 그냥 뜨고 내릴 뿐인 '한반도 일주 비행'은 국내 투어다. 국내선에 이 '괴물'이 투입되는 것도 역시나 최초. 해외 갈 때나 움직이는 이 덩치의 원래 가격은 퍼스트와 비즈니스석 기준 300만원을 웃돈다. '코로나 특가'에, 심지어 국내선으로 까지 콧대를 낮춘, 이 괴물의 탑승 가격은 10분의 1 정도. 그러니, 아무리 코로나 비상이라도 20분 만에 동이 날 만 했다.
이날 여행에서 만난 버스·철도여행 전문 박준규 여행작가는 "국내 버스와 철도여행만 하다보니 해외여행 할 기회가 없다"며 "솔직히 평생 못타볼 지도 모를 A380을 타기 위해 이번 여행에 나섰다"고 귀띔했다.

▷ 24일 오전 11시 코로나 뚫고 하늘을 날다
"고오~~~"
해외만 다니는 초 럭셔리 비행기 A380. 해외 하늘길이 막히면서 몸이 근질근질 했는지 엔진 숨 소리가 거칠다. 심장도 따라 뛴다. 편명은 OZ8999. 24일 오전 11시 탑승 후 잠깐 기내방송이 나온다. 승무원의 멘트가 평소와는 180도 다르다.
"오늘 특별 비행편은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해 강릉 포항 부산 제주를 거쳐 다시 인천 국제공항으로 돌아오는, 선회 여행으로 기획되었습니다...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비행중에는 항상 마스크 지속 착용을 요청드립니다"
11시 10분께. 상상할 수 없는 안내방송과 함께 A380이 둥실, 하늘위로 날아올랐다. 평소 같으면 레프트 턴을 해 중국쪽으로 향했겠지만 오늘 만큼은 항로도 달랐다. 해외로 향하고픈 마음을 꾹 억누른 A380은 이륙 즉시 기수를 우측으로 틀어 강릉을 향했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뒤 강릉, 포항, 부산을 찍고 제주로 더 남하한 뒤 인천으로 되돌아오는 2시간짜리 루트다. 하루 전인 23일 제주항공이 펼친 당일치기 루트(인천, 군산, 광주, 여수, 사천, 부산, 포항, 인천)와는 정반대 질주인 셈. 하지만 항로를 선으로 연결하면 역시나 '하트'(♡) 모양이 된다. 사랑으로 코로나를 극복하자는 진중한 의미도 담는다.
"와아~" 코로나 갑갑함에 억눌렸던, 여행 본능이 폭발했는지, 전 승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엔 볼 수 없는 낯선 기내 풍경이다.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기내에선 철저히 거리두기가 이뤄졌다. 좌석은 퍼스트급인 '비즈니스 스위트'와 비즈니스(비즈니스 스마티움), 이코노미석까지 3등급. 퍼스트를 제외한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은 방역 지침을 준수해, 실제 가용 좌석수보다 185석 축소된 310석만 운영됐다.
기자의 좌석은 이코노미석 31C. 이륙후 10분쯤 흘렀을까. 비행기가 상승각에서 수평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안전벨트 불이 꺼졌다. 지금부터 순항이다.
▷ 조용? 천만에! 시끌벅적 기내 이벤트
순항후 모든 과정은 국제선 운항방식과 동일했다.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온(ON). 누구나 편하게 눈앞에 놓인 엔터테인먼트 박스를 통해 영화 게임 TV를 즐기면 된다. 영화 목록도 다양하다. 보고 싶었던 '저스트 머시(Just Mercy)'와 '블러드 샷'까지 없는 게 없다.
기내 방송도 흥미롭다. 항공기가 주요 지점 상공을 지날 때 마다, 독특한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평소같으면 딱딱하고 경직된 목소리로 기내 방송을 할 기장들은 부드러운 목소리의 문화해설사로 돌변해 분위기를 띄웠다.
"손님 여러분, 기장입니다. 왼쪽편으로는 단풍이 물든 설악산과 오대산일 볼 수 있구요, 잠시후 선회 뒤에는 오른쪽으로 동해바다와 포항, 부산 인근의 풍경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비행 고도를 낮춰 창밖을 통해 형형색색 국내 가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비행의 매력이다. 잦은 선회와 고도차 탓에 약간 어지럽긴 해도 평소 비행기 여행에선 맛볼 수 없는 스릴감이다.
함께 탑승한 아시아나 항공 홍보팀 서기원 차장은 "평소에는 8000~1만 피트로 순항하지만 화끈한 상공 관람을 위해 5000피트까지로 낮추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순항 후 15분 쯤 지나가 드디어 기다리던 기내식 타임. 국제선에서나 나오는 '파스타와 닭가슴살 요리'가 오늘 메뉴다. 인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이 여행에 참가한 한 초등학생은 "10번 이상 비행기를 타봤다. 기내식이 너무 먹고싶어 아빠 엄마를 졸랐다. 닭다리를 먹고 싶었는데, 다음번엔 꼭..."이라며 웃었다.
이코노미석 기내식으로 나온 닭가슴살과 파스타.
식사 후 자칫 졸릴 수 있는 시간대엔 바로 이벤트가 펼쳐진다. 승무원들이 직접 이벤트 진행 MC로 변신했다. 이벤트 방식은 럭키 드로우(복불복). 1등에게는 동남아 왕복 항공권이, 2등(2명) 3등(2명)에게는 아시아나 로고 피크닉 매트 비누 세트가 선물로 나왔다. "영예의 1위는, 좌석 39*번입니다". 쏟아지는 박수속에 아, 빈손. 왜, 럭키드로우는 나만 비켜가는걸까.
▷ 오후2시, '척트립(여행하는 척)'도 착륙
지루 할 틈 없이 이어진 약 1시간 50분간의 비행을 마치고 어느덧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내려앉았다. 착륙과 동시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코로나 19에 꽉 막혔던 여행 본능을 잠시나마 일깨워준 비행에 대한 고마움이리라. 고향땅 부산을 하늘만 훑었고, 제주 하늘까지 찍고도 흑돼지를 맛보지 못한 건 너무나 아쉬웠지만 '척(여행하는 척)'이라도 제대로 했으니 여한이 없다.
"그걸 왜 타?"며 퉁명스레 물었던 와이프의 질문이 떠오른다. 여행이란 게 굳이 어딜찍고 와야 하는건가. 아니다. 잠깐이라도 그저,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 그게 힐링이요, 여행이다. 왜, 그런말도 있지 않은가. '여행에서 가장 좋을 때는 비행기에 딱 오르고 내리는 그 찰나의 순간'이라는.
착륙과 동시에 기내 마지막 방송이 흘러나왔다.
"손님 여러분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우리 아시아나항공은 곧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우리를 떠났던 여행도, 일상도 곧 돌아오기실,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멘트가 흐르자 여행에 참여한 모두가 비장한 눈빛이다. 인간은, 강하다. 바이러스가 설쳐도 우리는 이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의지. 우리를 떠났던 여행도, 일상도, 기어이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각오가 비친다. 왜 타냐고? 인간은, 우리는 살아있고, 또 기어이 살아가야 하니까.
▶▶ 한반도 일주비행 100배 즐기는 Tip =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해 제주항공, 하나투어 등 다양한 항공·여행사들이 부정기적으로 선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의 A380 한반도 일주 비행 가격은 비즈니스 스위트석(회당 6석) 30만5000원, 비즈니스 스마트티움석(회당 57석) 25만5000원씩. 총 2시간 비행으로 인천 - 강릉 - 포항 - 부산 - 제주 - 인천을 거치는 코스다. 하나투어는 항공권 단품 외에 인천공항 인근 특급호텔 1박을 연계한 에어텔(항공+숙박) 상품도 함께 선보였다. 1인 기준 항공권(이코노미석 20만5000원)에 7만4500만원 추가하면 30만원채 안되는 금액에 항공, 숙박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다. 인천국제공항 인근 영종도에 있는 '아트테인먼트 호텔' 파라다이스시티에 투숙한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