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여의도 저승사자`의 눈에는 금융사기 억울한 국민 천지
입력 2020-10-13 19:11  | 수정 2020-10-13 19:33
12일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이 서울 서초구 선능 법률사무소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주식과 사모펀드 등 목돈 마련을 위해 금융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금융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지식이 없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27년간의 검사시절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린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59·사법연수원 24기)은 최근 금융시장을 보며 걱정어린 충고의 목소리를 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서민 다수가 피해를 입는 금융범죄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전 검사장은 이달 5일 선능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업무를 시작했다. 주가조작 등 금융 범죄를 엄단해 '여의도 저승사자'란 별명이 붙은 그는 "검사 개인으로서 받을수 있는 영예는 모두 받았으니, 이젠 변호사로서 수사 과정에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문 전 검사장의 수사 경력은 우리나라 금융범죄 수사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지난 2월 폐지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초대 단장을 역임해 우리나라 금융범죄 수사 시스템을 세웠다. 2015년 서울남부지검 2차장을 맡으며 골드만삭스, ING자산운용 등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불법행위를 속아내기도 했다. 이같은 공로로 2016년엔 검찰내 시세조종분야 첫 1급 공인전문검사(블랙벨트) 인증을 받기도 했다. 2017년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 의혹 수사팀장을 맡아 수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기도 했다.
문 전 검사장이 금융수사를 시작한 시점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현 반부패1부)에서 경제전담 수사를 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코스닥 상장사인 '리타워텍'이 한 달 사이 주가가 33배나 뛰게 된 사건을 맡게 됐는데, 수사 도중 창업투자회사의 양대산맥중 하나인 한국기술투자(KTIC)까지 연루돼 사건이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결국 KTIC가 말레이시아 역외펀드를 이용해 수익금 수백억원을 가로챈 것이 밝혀지면서 주요 관련자들이 법정에 넘겨졌다. 문 전 검사장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통상적인 반부패범죄보다 금융범죄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됐다. 금융범죄는 오로지 돈이 목적이라 이를 위해 횡령, 배임, 조세포탈, 재산국외도피같이 온갖 불법행위가 판쳐 결국 특별수사의 종합판이 된다"고 말했다.

문 전 검사장이 검찰 증권범죄합수단의 폐지를 염려한 것에는 이같은 배경이 있다. 그는 초대 합수단장을 역임하며 사실상 금융범죄 대응 시스템을 설계했다. 문 전 검사장은 "2013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금융범죄에 대해서 언급한 후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근절 종합대책'이 나왔다. 그 일환으로 대검에서도 합수단이 설립됐는데, 당시 합수단에 인사발령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인사를 받고 이틀간 밤새며 수사 경험을 토대로 조직 구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후 국세청장,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예금보험공사장 등 기관장들을 찾아뵙고 조직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협조를 구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합수단은 종래의 단선적이고 지지부진했던 금융수사를 유관 기관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수사로 뒤바꿔놨다. 당초 수사는 '한국거래소→금융감독원→증권선물위원회→검찰'로 이첩되는 과정에서 수년간 늘어지며 추가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감원, 금융위, 국세청 등 관련 기관들이 모두 모인 합수단은 '패스트트랙' 제도를 통해 이 절차를 단축해 획기적인 성과를 얻었다. 합수단 출범 2년 6개월간 구속기소한 주가사범만 185명에 이르렀다. 문 전 검사장은 "금융범죄 수사는 검찰이 혼자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기업내부의 범죄자들과 외부세력의 결탁, 수백개의 계좌를 이용한 손바꿈을 추적·수사하기 위해선 금융위, 금감원, 한국증권거래소 등 유관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법무부는 합수단이 비직제기구란 이유를 들어 지난 2월 폐지했다. 문 전 검사장은 "지난해 합수단 폐지 움직임이 있을때 합수단 필요성을 강조한 보고서를 직접 법무부에 제출하기도 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합수단을 강화해야할 시기에 폐지된 것을 보면 아직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검찰에 대한 평가를 내려달라는 질문에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검사복을 벗은 선배로서 예의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수사 역량에 관해선 단호했다. 문 전 검사증은 금융수사청(가칭)을 검찰에서 독립시키는 등 전문성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특정 검찰청이 증권거래위원회에 협업을 하듯 우리나라도 독립수사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정체성이 위협을 받고 있는 시점이므로 이 같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문 전 검사장은 이제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돕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일하다 느낀 점 중 하나가 금융 거래를 하는 기업인들이 법률자문의 필요성을 크게 못느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인들이 불법행위 여부를 인지하지 못한채 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거나,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에 수사 전문가이자 법률가로서 이런 부분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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