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밝힌 유화적인 대남 메시지는 향후 남측의 역할을 기대하며 남북관계를 관리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열병식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메시지는 지난달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과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김 위원장의 공식 사과가 담긴 북한 통지문 발송의 연장선에서 읽힙니다.
하지만 내부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열병식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대남 메시지가 나왔고, 특히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직접 밝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적절한 시기가 오면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과시한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발언이 갖는 막강한 비중을 고려하면 빈말이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다만 북한이 생각하는 본격적인 남북교류 시점이 '당장'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남측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드러내되 '보건위기 극복', 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종결 이후를 관계 복원의 타이밍으로 밝혔습니다.
표면적으로 내건 시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 대선이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분수령이 미 대선이 될 것"이라며 "누가 당선되든 관계없이 문재인 대통령과 신뢰 속에서 남한 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기대하는 메시지"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하든, 새로운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서든 향후 북미관계를 풀어가는 데 남측의 역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여론 조사상 우세를 보이는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도 당선 시 오바마 전 대통령에 비해 북한에 대한 관여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후보 캠프의 외교정책 고문인 브라이언 매키언 전 국방부 수석부차관은 연합뉴스와 단독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비핵화 목표로 나아가게 하는 실제적 전략의 일환이라면 (김 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대선 이후 문재인 정부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도록 설득하고 북미관계를 중재하는 등 다시 한번 적극적인 역할을 펼칠 기회가 올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다만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선 지난달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남북 간 분명한 매듭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사건으로 남한의 대북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는 남북관계가 다시 추진되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사과 이후 실질적인 대응을 어떻게 나타내느냐에 따라 국내 여론이 결정될 것"이라며 "이 부분은 남북관계에 가장 큰 문턱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