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000건이 넘는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는 있지만,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6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경찰청 데이트 폭력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인원은 총 4만3046명이다. 매년 9566명이 검거되는 셈이다.
유형별로는 폭행·상해로 검거된 경우가 3만1304건(72.7%)으로 가장 많았다.
감금·협박·체포 (4797건), 성폭력(571건), 살인미수(144건), 살인(69건)이 뒤를 이었다.
지난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발생한 데이트 폭력 유형별 건수[자료 출처 = 경찰청]
강요와 통제만으로 최대 5년형이 선고되는 영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이숙진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지난 2018년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의 경우 피해 내용, 상습성, 위험성, 죄질 등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수사하여 구속 등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의 의견이다.
대학생 김 모씨(23)는 "헤어지자는 말에 남자친구가 자취방 창문을 깨고 들어와 얼굴을 가격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해자가 경찰에서 훈계 조치를 받았지만 풀려난 지 한 달 만에 또 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어 "불안한 마음에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기 힘들다"고 전했다.
수사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이도 있었다.
직장인 이 모씨(26)는 "데이트 폭력을 당해 경찰서에 찾아갔지만, '폭력을 당하면서까지 왜 만나냐'는 엉뚱한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을 잘못한 것 같냐'는 발언도 들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과 달리 데이트 폭력에서는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법적 근거가 없다. 징역 3년 이상의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만 긴급체포가 가능할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접한 네티즌들은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wres****)은 "우리나라 경찰들 참 희한하다"며 "피해자들이 보호해달라고 하면 과잉의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댓글에는 "아직도 범죄자가 죄를 저지르기 좋은 환경이라니…(pica****)" "여성부는 이런 일 막으라고 있는 부서 아닌가?(whoa****)" "세상이 흉흉하네요(rabb****)" 등 반응도 있었다.
경찰청 등 관련 부서는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찰청 관계자는 매경닷컴과 통화에서 "남성도 데이트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면서 "데이트 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신속히 수사에 착수한다"고 강조했다. 미진한 수사가 있었다는 질문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유감"이라며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관부서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1388) 관계자는 "데이트 폭력 문제가 오래전부터 제기됐는데 아직도 확실한 법안이 없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1388은 사건의 경중에 따라 즉각 대응에 나서는 등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 양형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었다.
고범준 변호사는 매경닷컴과 인터뷰에서 "데이트 폭력도 엄연한 범죄"라며 "데이트라는 단어가 폭력 앞에 붙다 보니 데이트 폭력은 연인 사이의 개인적인 일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지적했다.
수사기관이 데이트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명칭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고 변호사는 "데이트 폭력에 관한 독자적인 처벌 규정이 없어 일반 형법으로 규율된다"며 "형법상 폭행죄는 형량이 높은 편이 아니어서 데이트 폭력이 발생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도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서윤덕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