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말처럼 모든 미국인은 행운아야. 코로나19에 걸리면 헬리콥터가 와서 병원으로 데려다주지. 그리고 최고의 의료 전문가들이 나를 전담하게 돼. 내가 해야 하는 게 뭐냐고? 그건 매년 750불(88만원)의 세금만 내면 되는거지."(트위터 사용자 BLUE***)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오후 조기 퇴원을 감행하면서 남긴 대국민 메시지가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불을 지르고 있다.
그는 백악관에 돌아온 뒤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에서 "20년 전보다 더 좋은 상태"라며 건재를 과시했다. 또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한가지 확신하게 된 점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자신에게 극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병원 측에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본 미국 시민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영상을 올린 뒤 "매년 750불의 세금만 내면 (나도 당신과 같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냐"는 트위터 사용자 BLUE*** 씨를 비롯해 수 많은 분노와 비난의 글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야당과 반(反)트럼프 매체에서 "모든 미국민이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이 사실을 망각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로버트 메넨데즈 민주당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걱정하지 말라고? 모든 미국인이 당신과 똑같은 치료를 받기를 바라지만 (현실은)그렇지 못하다"고 힐난했다.
인터넷매체 허프포스트는 '트럼프가 코로나19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세계적 클래스의 의료치료 덕분'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매년 750달러의 세금만 낸 그에게 주치의를 포함해 13명의 의료진이 붙어 있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백악관에서 메릴랜드주 최고의 병원까지 헬리콥터로 신속 이동했으며, 아직 임상 시험 단계인 항체치료제를 맞는 특혜를 누렸다고 비꼬았다.
리제네론사가 개발 중인 이 항체치료제를 맞을 수 있는 자격은 사전에 임상시험을 신청한 자로 한정된다. 일반인은 물론 세계 초부자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최고의 의료서비스와 개발 단계 의약품까지 현행법을 초월하며 제공 받은 그가 죽는다는 게 더 이상하다는 논리다.
소셜미디어에서 터져나오는 비판글은 더 직설적이다. 트위터 사용자 Ann* 씨는 "그의 1년 세금 750달러는 평범한 병원의 하루 치료비도 안 된다"며 "퇴원한 대통령이 (그에게 최고 의료서비스를 혈세로 제공해준) 모든 미국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사용자인 Cla*** 씨는 "750달러를 세금으로 내는 이들의 현실은 병원에서 타이레놀 몇 알을 처방받는 수준입니다. 카페트가 깔린 럭셔리한 입원실에서 회복을 누리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미국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7일 부동산 재벌이었던 트럼프가 2016년과 2017년 연방정부에 납부한 소득세가 연간 750달러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세계 초부자에 들어가는 그가 미국에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최근 미 공영라디오방송(NPR)은 이월결손금 공제 제도가 지난 100년 간 최초 1년에서 현재 무제한으로 뒤바뀐 조세시스템 탓이라고 지적했다.
1918년 미국 조세 시스템에서는 예컨대 올해 이익이 나도 과거 손실을 세금 감면에 쓸 수 있는 기간이 1년으로 한정됐지만 수 차례 법 개정을 통해 2년, 15년으로 확장된 후 현재 사실상 무제한이 됐다는 것이다.
NPR는 "공제 기간을 확대해주면 정부 세수확보에 흉년이 들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파산시킬 수 없어 정부는 세수 흉작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혜택이 제공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이 같은 광범위한 절세·탈세 시스템 하에서 창의적인 세금 줄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NPR는 "지금은 정부가 초부자들의 세금을 감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초부자들이 고용한 화려한 변호사들이 만든 방대한 서류들을 다 보는 것도 힘들고 퍼즐처럼 나뉜 수 백개의 세금 신고서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 탈루의 실체를 잡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해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고작 한 해 88만원의 소득세를 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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