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정부가 법을 고쳐 가족기업이 곳간에 쌓아둔 돈에 세금을 물린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는 최근 내년도 세법개정안에 최대주주와 친인척 등 특수관계자가 지분 80% 이상을 가진 개인유사법인(가족기업)의 초과 사내유보금에 소득세를 물리는 방안을 담았다. 가족기업이 경영 안정 등을 유보금을 쌓았는데 이게 일정 수준(세후 수익의 50%)을 넘어가면 배당으로 간주해 배당소득세를 물리겠다는게 골자다.
6일 한국경제연구원은 '개인유사법인의 사내유보금 과세의 문제점 검토'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 중 가족기업만 35만곳으로 초과 유보소득을 보유한 법인은 6만 5000곳으로 분석된다"며 "정부 유보소득세는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등 문제를 발생시켜 결국 중소기업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중소기업중앙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기업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은 조사대상 300곳 중 절반(49.3%)에 달했고 9.3%가 초과 유보소득을 냈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영 안전판이 필요한 상태에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물리며 기업 존폐가 불투명해졌다"고 반발했다.
특히 현금이 부족한 법인은 배당을 할 수 없는데도 주주에게 배당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해 과세한다는 점이 문제다.
A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A씨 회사는 전체 지분 85%를 특수관계자가 쥐고 있는데 매출은 10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뚫고 열심히 돈 벌어서 주물 설비에 투자할 돈을 아껴놨더니 배당받지도 않은 돈에 소득세를 매기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사내유보금이 많이 적립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과세하면 투자, 연구개발을 통한 기업 성장은 어려워진다"며 "장기적으로 영세 중소기업 성장기회를 빼앗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 곳간에 대한 세금 폭탄이 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등은 지난해 '투자·상생협력촉진세'로 8554억원의 세금을 냈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는 자기자본 500억원이 넘는 대기업 등이 이익잉여금을 임금인상, 상생협력에 사용하지 않으면 최대 90억원 법인세를 더 내야 하는 제도다.
[송민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