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
입력 2020-10-06 14:31 

세상에 아무리 바뀌어도 이곳에서의 삶은 천년동안 변하지 않았다.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이야기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기도와 노동으로 채워진다. 아주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사적인 대화를 해서도 안되고, 인터넷 전화 신문 방송 등 모든 외부와의 소통이 금지되어 았다. 이곳에 머무는 수도사들은 죽어서도 이곳에 묻힌다. 그들은 평생 봉쇄구역을 벗어날 수 없으며 가끔 가족 면회가 허용되지만 함께 식사를 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빈약한 음식과 옷으로 평생을 지내야 한다. 1084년 카르투시오 수도원이 설립된 이후 천년동안 지켜온 방식이다.
아시아 유일의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이 경북 문경에 있다. 이곳에서의 삶을 다룬 다큐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김동일 감독)가 11월 중순 개봉한다.
영화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11명 수도사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사계절의 고요한 흐름속에 담긴 수도사들의 삶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가장 낮게 그러나 가장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은 속세를 향해 너무나 많은 질문을 던진다.
2005년 세계 최초로 프랑스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다룬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의 한국판을 보는 듯 하다.
영화속에서는 놀랍도록 검박하게 살아가는 수도사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좁은 공간에서 영원의 진리를 쫓으면서 산다. 세상은 공허한 말들의 성찬 속에서 병들어가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침묵이 그 성찬을 대신한다.
영화는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수도사들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으면서 철저한 관찰자의 시각으로 아무런 가감없이 그들의 삶을 드러낸다.
한 평짜리 독방에서 구멍난 양말을 꿰메고, 반찬도 없는 맨 쌀밥을 먹고, 노동과 기도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의 삶이 천천히 그려진다. 일주일에 한번 허락되는 대화와 산책 시간이면 그들도 아이들처럼 웃는다. 1년에 한 차례 허락되는 가족방문때는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동생이다. 하지만 잠시후 또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영화는 우리를 반성의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크고 강하고 화려한 것만 쫓아서 사는 우리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서 한 동안 헤어나올 수 없다.
세속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욕망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수도사들의 '위대한 포기'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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