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코로나19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해외여행 자제를 권고한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남편이 요트 구매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외교부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강 장관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는 요트 구매와 현지 항해 여행을 위해 지난달 미국행을 계획하고 항공편을 예약한 뒤 지난 3일 미국으로 떠났다.
이 교수는 출국 당일 공항에서 '정부가 해외여행 자제를 권고하지 않았느냐'는 한 방송사 기자의 지적에 "코로나가 하루 이틀 안에 없어질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맨날 집에서 그냥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라고 답했다.
이 교수 주장처럼 요트 구매와 해외여행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주무부처 장관의 가족도 따르지 않는 해외여행 자제 권고를 국민이 받아들이도록 정부가 제대로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기꺼이 양보해온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냐는 지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고 노무현 대통령도 변호사 시절 요트를 즐기다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던 1970년대말 취미로 요트를 배웠다.
그러다 1982년 일본 중서부 시가현 오츠시에 위치한 비와호에서 영국왕립요트협회 자격증 보유자이자 스포츠센터 운영자인 이노우에 유시오 씨로부터 1주일간 요트 강습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요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이후 요트 조종술과 강사 자격을 취득한 노 전 대통령은 1983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요트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보였고 대통령 취임 후인 2005년에는 이노우에 유시오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하기도 했다.
당시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이 소유한 요트를 놓고 '호화요트설'이 불거지면서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인이 어떻게 사치스러운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으나 실제로는 수백만원짜리 중고 '딩기(dinghy) 요트'로 확인되면서 파문이 가라앉았다.
딩기 요트는 4인승 이하의 선실이 없는 요트로, 주로 경기용으로 사용되는 소형 요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넘는 국가에선 골프, 3만달러가 넘으면 승마, 4만달러가 넘으면 요트산업이 발전한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요트는 선진국 스포츠다.
국내에서도 2017년 기준으로 해양 레저목적으로 등록된 선박이 2만5000여척에 달한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평상시라면 개인이 요트를 구매하든, 해외 여행을 떠나든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문제는 적시성(適時性)과 타인에 대한 공감 여부다.
코로나 감염 확산이 우려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개인의 취미활동이나 해외 여행이 정부의 방역지침과 국민들의 눈높이에 어긋나선 곤란하다.
정부가 방역을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까지 과도하게 침해하는 마당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외교부처 수장의 남편이 정부 방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만 즐기려 한다면 그동안 가게에서 맥주 한잔 못마시고 노래 한곡 못부르고 심지어 추석에 고향에 못내려간 국민들에게 심한 배신감과 허탈감을 줄 수 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다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고위공직자 가족이 여행에 요트까지 챙기며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를 즐기는 것은 힘겨운 일상을 보내는 국민들에게 위화감마저 조성할 수 있다.
야당에서 "국민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자신들은 이율배반적인 내로남불을 일삼는 문재인 정권의 민낯"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교수의 일탈 행위가 K방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뒤늦게 "송구스럽다"며 사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내편' '네편'으로 갈라 방역을 차별하는 '정치 방역'부터 당장 없애야 한다.
고위공직자들 또한 '묻지마 집회 봉쇄'만 외칠 게 아니라 자신과 주변부터 살펴보고 언행과 태도에 문제가 없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때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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