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당일이었던 지난 1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의 한 길가에서 60대 여성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으로 출동한 소방당국은 이 여성을 병원으로 옮겼지만 여성은 결국 숨지고 말았다. 현장에서 50m 떨어진 이 여성의 집에서는 피를 흘리며 사망한 40대 아들과 흉기가 발견됐다. 이들은 모자 사이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혼자 사는 모친 집에 추석을 맞아 아들이 방문했다가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며 "두 사람이 쓰러져 있던 장소가 불과 수십 미터에 불과한 점을 미루어 아들이 어머니를 흉기로 찌른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면서 올해 추석을 비대면으로 보낸 가정이 다수를 이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가족 간 싸움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비극이 벌어졌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이같은 가정폭력은 평소보다 추석 연휴에 더 많이 신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추석 연휴 가정폭력 신고 및 입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추석 당일을 포함한 3일 연휴 기간 동안 신고된 가정폭력 건수는 총 857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하루 평균 약 953건에 달하는 수치다. 같은 기간 하루 평균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약 702건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추석 연휴 기간에 평소보다 35.8% 더 많은 신고가 이뤄진 셈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추석연휴 사흘간 3125건의 신고가 접수돼 일평균 1042건을 기록했다.
이번 연휴 기간에도 첫날인 지난달 30일부터 가정폭력에 의한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낮 12시 17분께 충남 아산시 인주면에서는 6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집에서 누나 부부에게 수차례 흉기를 휘둘러 A씨의 매형이 사망하고 그의 누나도 크게 다쳤다. A씨는 누나 부부와 술을 마시던 중 집안 제사 문제 등에 불만을 품고 흉기를 휘둘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맡은 충남 아산경찰서는 지난 2일 매형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 등으로 A씨를 구속했다.
같은 날 아침 8시 42분께 전남 순천시 한 아파트에서는 70대 남성 B씨가 공구로 70대 아내의 머리를 수차례 때린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범행 이후 다른 흉기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해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된 B씨 부부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을 맡은 전남 순천경찰서는 이날 B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이처럼 명절 연휴 범죄가 시기마다 반복해서 벌어지는 가운데 최근 3년 동안 경찰에 집계된 가정폭력 현황은 양적으로는 일견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질적으로는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신고 된 가정폭력 발생현황은 11만2288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7년 27만9082건으로 집계된 이후 3년 연속 감소세다. 서울지방경찰청도 이날 추석 연휴 동안 관내 가정폭력 112신고 건수가 1580건으로 전년 대비 19.4% 줄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인원은 2017년 4만5264명에서 2018년 4만3576명으로 잠시 줄었다가 2019년 5만9472명으로 폭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됐던 올해 역시 상반기에만 2만5846명이 검거되면서 연말에는 5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가정폭력 유형별로는 폭행이 3년 연속 60% 비율을 넘기며 가장 많은 범죄 유형으로 집계됐다. 상해·폭력행위 비율 또한 꾸준히 늘어 지난해 처음 20% 비율을 넘어섰다. 또 재물손괴와 살인을 포함한 기타 범죄 또한 최근 2년 동안 5% 비율 이상 발생했다. 이밖에도 가정 내 강간·추행 범죄, 체포·감금 범죄는 지난해 각각 237건, 228건 발생했다.
현장에서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줄이기 위해 긴급임시조치를 비롯한 즉각적인 대응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긴급임시조치는 가정폭력 범죄 재발 우려가 있고, 긴급을 요해 법원의 임시조치 결정을 받을 수 없을 때 현장 경찰관이 직접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수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하더라도 그에 대한 제재가 과태료에 불과해 상습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다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피해자 보호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경찰 재량으로 긴급임시조치 위반자를 구금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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