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강원도로 귀촌한 주부 김 모씨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급격히 흉흉해진 마을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며칠 전 마을발전기금 100만원을 내라는 이장 요구를 거절하자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이웃들로부터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귀농은 했지만 내가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전세로 사는 사람인데 돈을 맡겨 놓은 것처럼 달라 한다"고 푸념했다. 김 씨가 이같은 고민을 귀농 카페에 올리자 비슷한 고민 호소하는 댓글들이 줄이었다.
마을발전기금이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풍성하던 시골인심에 잦은 불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발전기금은 자발적으로 지역 내 민간 차원에서 관리되는 공공기금이다. 옛날엔 그저 마을 사람들끼리 마을 잔치 등 동네 행사를 위해 인심차원에서 '심시일반' 몇 만원씩 모았던 돈이다. 그런데 최근엔 시골이 개발되거나 태양광 등 국가사업이 곳곳서 일어나면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되는 '뭉칫돈'이 되자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4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내놓은 '지역공동체 내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갈등해결방안 연구'에 따르면 마을지역기금 관련 갈등은 지난 2018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대두된 후 전국적으로 늘어가면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연구원이 마을발전기금을 키워드로 빅데이터 분석을 해본 결과 부정적인 반응이 77.8%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구원은 "귀농인들을 상대로 한 노골적인 마을발전기금 요구를 비롯해 지역 개발에 따른 '뭉칫돈'을 둘러싼 마을 주민간 분쟁 등이 이런 부정적 인식에 크게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해 11월 서산시 대산읍지역에선 태양광 마을지원금을 두고 주민들이 이장을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공 업체가 1억 원대의 거액을 마을 발전기금으로 전달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장이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며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마을 이장은 일부 주민들이 자신을 모함했다며 무고죄로 맞불을 놔 갈등이 심화됐다.
문제는 이런 발전기금을 둘러싼 갈등에 정부조차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을발전기금 채워주기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할 때부터 등장한 카드다. 현정부 들어 신재생 에너지 보급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건설업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마을지원금을 지원받고 태양광 패널 설치를 동의하는 급격히 사례가 많아졌다.
태양광 뿐 아니다. 정부는 최근 농어촌 빈집 숙박 스타트업 '다자요'의 사업모델을 합법화하기 위해 이에 반대하는 농촌단체를 설득하기 위한 '당근'으로 사업자가 마을발전기금으로 상생기금을 적립해 주는 모델을 제시했다. 마을발전 기금 문제에 정통한 한 농촌문제 전문가는 "도심에서 재개발 사업의 동의율을 높이기 위해 건설사들이 돈을 뿌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재개발 사업 후 주민들간 공동체가 깨어지는 것처럼 농심도 결국 닮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 측은 이 같은 갈등이 심화되기 전에 마을발전기금에 대한 투명한 관리규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돈만 쥐어주는 것에 그치지 말고 사후 관리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연구원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비처럼 '마을재산 관리대장'의 작성과 관리를 위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며 "마을 공동체가 직접 공동재산을 자체 조사하고 목록을 작성하게 함으로써 주민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려고 하는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면서 "수요자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건강한 농촌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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