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은행, 펀드도 대출처럼 한도제한 한다니…
입력 2020-09-29 16:18 
개인들이 가입하는 펀드 한도를 은행이 정하는 규제가 시행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감독당국과 은행은 개인의 투자 위험을 관리해준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개인이 자기 책임하에 투자하는 것까지 막는 것은 '투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는 지적이다. 29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가 전날 의결한 '은행의 비예금 상품 판매 내부통제 모범 규준'에는 은행이 각 상품별·고객별 판매 규모를 미리 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은행들은 올해 말까지 이 내용을 내규에 반영한다.
모범 규준에 따르면 은행은 비예금 상품 선정·판매·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비예금 상품엔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 등을 제외한 펀드·신탁·변액보험 등이 포함된다. 이 상품위원회 기능 중 하나가 '판매 한도'를 정하는 일이다. 은행은 고객 투자 성향과 재무 상태, 금융상품 이해 수준, 연령, 구매 목적, 구매 경험 등을 고려해 고객별 판매 한도를 미리 정해야 한다. 고객별 판매 한도를 정하는 세부 기준 마련도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대출 한도'가 나오는 것처럼 펀드나 신탁에 가입할 때도 각자 정해진 '한도'가 있다는 의미다. 모범 규준은 업권 내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이지만 사실상 강제성을 띤다. 금융당국 눈치를 보는 금융사들이 알아서 모범 규준을 지키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별로 상품 한도를 미리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며 "고객 자산 규모 대비 각 상품별 투자 금액을 따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예를 들어 고객 금융자산이 1억원이라면 본인이 원해도 고위험 투자상품 한 개에 전 재산을 넣을 순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고객별로 투자 성향이 다르고 또 투자 전략도 나름대로 다른데 은행이 나서서 고객 투자 한도를 정해 이 수준 이상 비예금 상품 가입을 막는 것은 고객 선택권을 제한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모범 규준에 대한 실효성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모범 규준을 적용하면 고객이 원하더라도 주거래은행 한 곳에서 소위 '몰빵 투자'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고객이 다른 은행을 가거나 증권사 등 제2금융권에서 동일한 상품에 가입하면 이를 뚜렷하게 막을 방법은 없다. 투자 고객 자율성도 침해하고 실효성도 떨어지는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 소비자들이 자기 투자 성향에 따라 알아서 투자하면 되는데 이번 가이드라인은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획일적인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고객별 한도를 정한 이유를 국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당시 금감원 조사 결과 전 재산 1억원을 모두 DLF에 투자한 사례가 나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거액 자산가는 수십억 원을 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지만 전 재산을 위험 자산에만 투자하는 건 문제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며 "은행마다 고객별 투자 한도는 달라질 수 있고, 중요한 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이 상품별 한도를 정하는 것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상품 판매 한도는 상품 위험도와 복잡성,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은행이 공모 주가연계펀드(ELF)를 판매하려면 이 상품을 얼마나 판매할지를 미리 정하는 식이다. 은행에선 이 모범 규준이 사실상 '총량 규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각 은행이 상품별 판매 한도를 정하지만 은행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게 서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영 자율성도 크게 떨어진다. 상품을 찾는 고객이 많거나 경영상 이유로 판매 한도를 늘리려면 상품위원회 심의를 다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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