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대선 이후 새롭게 들어설 미국 행정부가 대북제재 완화를 포함한 비핵화 제안을 북한에 던질 필요가 있다고 한·미 양국의 대북 전문가들이 조언했다. 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선 기간 상황관리에 집중하기 위해 제재강화 일변도로 나가고 있지만, 새로운 행정부가 구성되면 미·북 양쪽에서 다시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유인이 생기는 만큼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세종연구소와 미국외교협회(CFR)는 23일 '미국 대북정책의 미래'를 주제로 '서울·워싱턴 포럼' 화상회의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주최했다.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은 "차기 행정부는 제재 대신 대화에 집중하길 바란다"며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선 새 행정부 취임 100일 내로 양국 관계자들이 다시 한 번 만남을 주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장은 "다음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핵능력을 생각하면 자국의 안보를 위해 협상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의 진전 속도를 감안하면 길게 생각할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젊은 지도자로서 문을 열 준비가 돼 있다고 보지만 유인이 필요하다"며 "제재 완화를 포함한 유화적 메시지를 북한에 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잔 손튼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은 "다음 행정부가 대화를 통해 다소간의 안보 관련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에 집중하길 바란다"며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제스처가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우선은 한·미 간 동맹 균열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북한이 틈을 노릴 수 없게 해야 한다"며 "중·러와도 협력해 모든 관련국이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공유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영변 핵시설 폐기는 미·북 간 합의의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며 "그 대가로 북한이 얼마나 비핵화 조건을 충족하느냐에 기반한 조건부 제재 완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새로운 미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첫 과제로 꼽았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대북 정책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스티븐스 이사장은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정책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실무협상을 중시하는 '바텀업' 방식을 취하는 등의 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차이가 있겠지만 북한 비핵화와 지속가능한 평화 프로세스를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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