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독감백신 '종이상자 배송' 논란에…신성약품 "궁극적으로 우리의 잘못"
입력 2020-09-23 08:22  | 수정 2020-09-30 09:04

보건당국이 유통 중 상온에 노출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에 대한 안전성과 효능 등 품질 검증에 나선 가운데, 업계에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 노출됐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독감백신은 택배박스와 같은 종이상자에 유통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당국과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당국은 독감백신이 의료기관으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냉장 상태가 유지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어제(22일) 독감 백신 무료 접종 사업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당국이 접종사업을 중단한 데 따라 문제가 된 백신은 아직 1도즈(1회 접종량)도 접종에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독감백신은 차광된 상태에서 2∼8℃로 동결을 피해 냉장 보관하는 게 원칙입니다. 유통할 때도 '콜드체인'이라고 불리는 냉장 상태가 잘 유지돼야만 백신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높은 온도에서 백신을 보관하면 백신의 주성분 중 하나인 단백질 함량이 낮아지면서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독감백신은 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해 제조하는 사백신으로,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약독화한 생백신에 비해 온도에 덜 민감하긴 하지만 적정한 온도에서 보관·유통돼야 합니다.

제조사들은 백신이 일정 시간 상온에 있어도 효능에 문제가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이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백신이 실온(25℃)에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 개월간 효능을 유지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제조사 자체 실험 결과이고 외부 변수가 반영되지 않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독감백신은 배송 과정에서 일부 기사들이 냉장차의 문을 한참 열어두거나, 판자 위에 박스를 쌓아두고 확인 작업을 하면서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의료계에서는 독감 백신이 아이스박스가 아닌 종이박스에 운반됐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일부 회원(의사)은 독감 백신을 아이스박스에 정상적으로 받았으나 일부는 종이박스로 받은 데다 수령인이나 수령일시를 사인해야 하는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단 종이상자로 백신을 수송한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려면 냉장차량 이용 여부를 함께 들여다봐야만 합니다. 생물학적 제제 등의 제조·판매관리 규칙 제6조에 따르면 백신을 냉장차량 또는 냉동차량으로 직접 수송할 때에는 아이스박스 등 냉각용 수송용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상온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품질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식약처는 구체적인 노출 시간과 정도를 조사할 방침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상온에 노출됐는지가 백신의 효능을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계에서는 당장 원칙에 어긋나게 보관, 배송됐다면 효능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부작용보다는 '물백신'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임 회장은 "부작용 문제가 아니라 (상온에 노출되면) 약효가 떨어진다는 게 문제"라며 "사람 몸에 들어가는 약을 그렇게 허술하게 다뤄서 되겠나"고 말했습니다.

식약처도 상온에 노출된 독감 백신의 효능이 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철저히 검증할 방침입니다.

효과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를 확인하고자 단백질 함량과 다른 시험 항목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품질 검증에는 약 2주 정도 소요될 전망입니다.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큰 차량에서 작은 차량으로 독감 백신을 옮겨 싣는 과정에서 문을 열어놓고 땅바닥에 뒀는데 그런 부분이 제보된 것으로 안다"며 "배송 업체가 잘못했어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대표는 "정부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판단하기로 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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