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제의 신간] `돌봄과 농업의 만남` 네덜란드 선진 케어팜을 가다
입력 2020-09-21 10:33  | 수정 2020-09-21 16:06

농업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치유하는 케어팜(carefarm), 유럽 여러나라에서 다양한 형태의 케어팜이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네덜란드 케어팜은 특히 건강증진 목적으로 농업과 복지서비스를 결합한 성공 모델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은 2020년 3월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치유농업법)'이 통과돼 치유농업연구와 보급에 대한 관심이 더욱 더 높아지고 있다.
최첨단 농업기술과 유기농업을 배우러 전 세계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는 네덜란드 바흐닝언대학에서 '건강과 사회'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저자인 조예원 대표는 케어팜을 접했다. 건강의 기본인 먹거리를 생산하고 자연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된 농업이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과도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게 됐고, 복지의 영역을 농업에 접목시켜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네덜란드 케어팜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즈음 한국에서 네덜란드 케어팜을 견학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견학 팀들을 안내하는 일도 여러차례 했던 저자는 일정상 몇 군데 이름난 케어팜만 바삐 둘러보고 돌아가야 하는 실정이 안타까웠다. 케어팜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농장마다 각기 다른 철학과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몇 군데 케어팜만 보고 그것이 네덜란드 전체 케어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에도 꼭 소개하면 좋을 케어팜 11곳을 꼽아 직접 농장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농장 곳곳을 살펴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네덜란드 케어팜의 시작은 1990년대 후반 발달장애와 같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러한 활동이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농가 경제와 보건복지 분야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에 네덜란드 농업부와 보건복지스포츠부는 1999년 '농업과 케어국가지원센터'를 만들어 케어팜 지원체계를 만들었고, 1998년 75개였던 케어팜은 2009년 1000개 이상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농업과 케어국가지원센터가 활동을 종료한 2010년부터는 케어팜 관련 농업인들의 연합체인 케어팜연합이 만들어져 케어팜의 품질관리와 정보교류 등의 활동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2019년 기준 네덜란드 케어팜은 1200여 곳에 달한다.
그렇다면 케어팜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이 이뤄지고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저자가 소개하는 11곳의 케어팜을 따라가다 보면 농업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저마다 다른 철학과 방식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대도시 한가운데 공원 부지를 빌려 장애인, 노인, 난민, 실업자 등의 참여객과 지역 주민들인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각종 채소와 과일을 기르는 도시 케어팜 푸드포굿. 돌봄에 적합한 품종의 소를 일부러 들여와 키우고, 9000마리 닭을 방사해 기르며 유기재배로 기른 채소와 과일을 전국 유통망을 가진 마트에 판매까지 하는 파라다이스농장. 말, 양, 사슴, 알파카, 돼지, 오리, 염소, 닭 등 모든 동물을 교육과 심리치료 목적으로 활용하는 굿랜드케어팜. 약물이나 알콜 중독으로 시설에서 지내거나 노숙자로 살던 사람들의 재활을 돕는 린덴호프오픈가든. 그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로서 실제 유용한 일을 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는 과정에 재활의 핵심이 있다고 말하는 린덴호프오픈가든 운영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중독인 재활과 돌봄에 케어팜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젖소를 방목해 기르고 우유를 짜 치즈를 만들어 농장 직판장에서 판매까지 모든 일들을 발달장애나 자폐 같은 정신문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린드붐케어팜. 신체장애, 정신장애, 치매 노인, 약물 중독자, 재활중인 환자까지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멧하톡농장은 원래 소를 기르던 목장이었는데 덩치 큰 동물을 어려워하는 고객을 위해 양 농장으로 바꾼 곳이다. 직업교육기관과 연계해 정식 직업훈련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는 멧하톡농장은 일반적인 생산농장에서 케어팜으로 전환한 사례의 모델로 꼽힌다. 발달장애, 청각장애, 뇌손상, 치매 등 다양한 증상을 가진 성인 참여객과 일반적인 농업활동을 하는 한편 자전거 수리로 주목받는 밀마스다이크농장. 수리한 자전거를 판매도 하는데 이 일에 흥미를 느낀 한 참여객은 자전거 전문 수리공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한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마지막 두 곳의 케어팜은 치매 노인들이 이용하는 케어팜으로 주목할 만하다. 에이크후버는 치매를 비롯한 여러 노인성 질환으로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을 위해 다양한 데이케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케어팜이다. 드레이헤르스후버는 중증 치매 노인들이 말년을 인간답고 최대한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을 만들자고 결심한 아버지와 딸이 함께 만든 케어팜. 부녀는 병원이나 시설 같은 사각형 건물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곳이 아닌 가정집 분위기의 거주공간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곳으로 농장을 택했고, 거주형 케어팜 드레이헤르스후버를 만들었다. 네덜란드 지자체는 복지 예산으로 해당 돌봄비용을 지급해 케어팜의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막 치유농업 분야의 첫걸음을 딛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책은 농업과 복지를 결합한 한국형 케어팜을 구상하는 많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조예원 글 사진, 도서출판 그물코]
[류영상 기자 ifyouare@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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