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알 사람 다 알겠지, 산유국 아닌 우리나라도 땅 파면 기름 나온다"
웹툰 '오일머니'에서 기술자 최장식은 송유관을 뚫고 기름을 훔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과연 현실에서도 송유관을 뚫고 기름을 훔쳐 파는 일이 가능할까? 실제로 용감하게 이런 일을 실행에 옮긴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막대한 이익이 아니라 징역살이였다.
지난 7월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유 과정을 총괄하는 '총책' 역할을 맡아 송유관을 뚫고 기름을 훔친 혐의(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등)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 6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판결에 따르면, 사건은 2016년 8월 A씨가 출소하며 시작됐다. A씨는 공범을 모집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전체 과정을 조율하는 총책으로,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도유 시설을 설치하는 '기술자' 두 명과 함께 도유 범죄를 모의했다. 이후 훔친 석유를 판매하는 '판매책' 한 명과 석유를 운반하는 '운반책' 네 명, 땅을 파는 '작업자' 네 명, 도유 판매를 알선하는 '장물알선책' 등과 함께 땅을 파서 기름을 훔치는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2018년 1월, A씨는 자금을 지원한 B씨로부터 9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송유관의 위치를 알려줬다. 다음은 작업자와 기술자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삽으로 땅을 파 송유관이 드러나게 한 뒤 도유밸브를 설치했다. 이어 2018년 4월과 6월 등 당진시의 농가 주택과 충청남도 오산시에 있는 논과 밭, 경기도 평택시의 야산 등에서 잇따라 송유관에 석유 절취시설을 설치해 기름을 훔쳤다. A씨 등이 훔친 석유 가액은 약 1억1600만원으로 조사됐다.
A씨는 재판에서 "(범행 장소가) 도유범행을 하기 좋은 곳이라는 취지의 얘기는 나눴으나 실제 도유 행위는 나머지 인원이 독자적으로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함께 범행을 저지른 공범들이 법정에서 "A씨가 기름을 훔칠 장소를 알려줄 테니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하며 A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가 과거에도 여러 도유범행을 하며 공범을 끌어들이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점도 고려됐다.
1심은 "도유범죄는 송유관 폭발이나 화재 발생 같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석유 유출로 회복 불가능한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 있어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며 A씨에 징역 4년 6월을 선고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웹툰 `오일머니`의 도유 기술자 최장식이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밸브를 연결한 뒤 돈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네이버 웹툰]
지난해 6월에는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가 또 다른 총책 C씨의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등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판결에 따르면 그는 2015년 5월 공범들과 함께 충북 청주시의 송유관이 지나가는 땅 위의 컨테이너 야적장을 임차하고, 이후 땅을 파 드러난 송유관을 뚫은 뒤 같은 해 11월경부터 컨테이너 차량으로 위조한 유조차에 기름을 담아 파는 식으로 기름을 훔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이 훔친 석유의 시가는 약 14억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재판에서는 공범들끼리도 속고 속인 정황이 드러났다. 범행에서 운송책을 맡은 혐의로 징역형을 확정 받고, 민사 소송에서 대한송유관공사의 보험자에 약 8억원을 배상하게 된 한 공범은 재판에서 "나는 빚을 자식에게도 물려주게 생겼는데, 기름 판 돈은 C씨가 다 가져가지 않았나, 나한테 왜 그러나"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1심은 C씨의 범인도피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도유 관련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B씨의 혐의 대부분을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도유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미수범들에게도 징역형이 확정됐다. 지난 7월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팀을 꾸려 전북 완주군과 전남 완주군에서 기름을 훔치려다 미수에 그친 D씨 등 6명에게 모두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들은 2019년 3월과 4월 각각 컨테이너 창고와 폐교 인근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 송유관의 기름을 빼내려 시도했으나, 중간에 암벽에 가로막히거나 밸브 불량 등의 문제로 실패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을 함께 모의했으나 불화로 중도 이탈한 E씨에게는 무죄가 확정됐다.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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