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병이 번져 차례를 행하지 못해 조상님께 송구하옵니다"
입력 2020-09-15 13:18 
풍산 김씨 김두흠이 쓴 `일록`. [사진 제공 = 한국국학진흥원]

조선시대에도 전국에 역병이 돌면 차례를 지내지 않았던 사실이 옛 문헌을 통해 드러났다.
한국국학진흥원은 16일 역병이 유행한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다수의 일기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일기 가운데 경북 예천에 살고 있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1582년 2월 15일자)'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하였다"며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고 기록했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 역시 '계암일록(1609년 5월 5일자)'에서 "역병 때문에 차례(단오)를 중단했다"고 적어놨고 5월 1일자 일기에는 "홍역이 아주 가까운 곳까지 퍼졌다"라고 전했다.
풍산 류씨 류의목이 쓴 하와일록. [사진 제공 = 한국국학진흥원]
안동 하회마을에 살던 류의목의 '하와일록(1798년 8월 14일자)'에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왔다. 이 일기에는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했다. 안동 풍산읍의 김두흠 역시 '일록(1851년 3월 5일자)'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현종실록(1668년)'에도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며 "홍역과 천연두로 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거나 전염 환자가 발생하면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당시에도 역병이 돌 때 차례를 비롯한 모든 집안 행사를 포기한 이유는 전염 우려가 컸고 조상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차례와 기제사는 정결한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데 전염병에 의해 오염된 환경은 불결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사람 간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건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다"며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과감하게 추석 차례를 포기하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고 밝혔다.
[안동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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