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끝난 US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빅토리야 아자란카(벨라루스)를 2-1(1-6 6-3 6-3)로 꺾고 우승한 오사카 나오미(23·일본)는 이번 대회 기간 내내 사람 이름이 적힌 마스크를 쓰고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1회전 경기에 '브리오나 테일러'라는 이름이 적힌 마스크를 쓰고 나온 그는 이후 엘리야 매클레인, 아흐무드 아버리, 트레번 마틴, 조지 플로이드, 필란도 카스티예에 이어 결승에는 타미르 라이스라는 이름이 적힌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인종 차별 문제로 인해 억울하게 숨진 흑인 피해자들입니다.
오사카는 1회전 경기를 마친 뒤 "이 경기가 TV로 전 세계에 중계될 텐데 희생자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이 마스크를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며 "결승전까지 7장의 마스크를 준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뜻대로 7명 희생자의 이름을 전 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알린 오사카는 이날 우승까지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사카는 이번에도 "취지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이 대회 전에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웨스턴 & 서던오픈 때도 당시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경찰로부터 총격을 받은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 사건에 항의해 4강전에 기권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오사카는 일본 국적이지만 아버지(레너드 프랑수아)가 아이티 출신입니다.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 아이티는 인구 대부분이 흑인이고 오사카 자신도 스스로 '흑인 여성'(Black Woman)이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오사카의 코치 빔 피세티는 대회 기간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마스크 착용이 확실히 오사카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오사카는 또 이번 대회 우승으로 2년 전 US오픈 우승 당시의 찜찜했던 기분도 확실히 털어냈습니다.
당시 오사카는 결승에서 세리나 윌리엄스(미국)를 꺾고 정상에 올랐는데 경기 도중 윌리엄스가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게임 페널티'까지 받는 등 경기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오사카는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홈 코트의 윌리엄스를 응원하던 미국 팬들은 심판을 향해 야유를 그치지 않았고, 이런 분위기는 시상식까지 이어졌습니다.
우승하고도 괜히 불편한 마음을 떠안게 된 오사카는 우승 소감을 "미안하다"(I'm Sorry)라고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절한 유머를 섞은 말로 우승 소감을 시작했습니다.
준우승한 아자란카가 오사카에게 "앞으로도 결승에서 자주 만나기를 바란다"고 먼저 덕담을 한 것에 대해 "오늘 너무 힘든 경기여서 나는 앞으로 자주 안 만나면 좋겠다"고 답한 것입니다.
무관중 경기여서 관중석이 웃음바다가 되지는 않았지만 시상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1세트를 불과 26분 만에 1-6으로 힘없이 내준 이후 반격에 나선 상황에 대해 오사카는 "1시간도 안 돼서 진다면 좀 창피할 것 같았다"고 특유의 무표정하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우승을 확정한 뒤 코트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펼친 그는 "많은 선수가 우승한 직후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을 봤는데 그렇게 하면 다칠 우려가 있어서 안전하게 누웠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