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K-바이오 기술력 충분…감염병 연구 통해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 쌓아야"
입력 2020-09-11 17:13 
이준행 국제백신학회 조직위원장 겸 라이트펀드 선정위원. [사진 = 한경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정(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K-바이오가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모범적인 방역 덕이다. 최근 세계 주요국들이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코로나19 치료제·백신을 선매입하던 것처럼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세계 각국이 한국산 진단키트를 확보하려 동분서주했다. 이에 씨젠을 비롯한 진단키트 관련 기업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항체 치료제 개발에 나선 셀트리온, 백신 개발을 하면서 다국적 제약사의 백신의 위탁생산을 수주한 SK바이오사이언스 등도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1984년부터 40년 가깝게 감염병 연구에 몰두해온 이준행 국제백신학회 조직위원장 겸 라이트펀드 선정위원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역량이 세계적 수준으로 높아진 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미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는 한국을 가벼운 존재로 보지 않는다"며 "SK바이오사이언스는 글로벌 백신 산업계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회사이고, GC녹십자 역시 세계보건기구(WHO)에 독감백신을 납품하는 4개 회사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많지 않은 탓에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실제 라이트펀드의 지원을 받는 한 바이오업체는 해외 연구소와의 계약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불공정한 조건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라이트펀드의 외국인 선정위원들이 글로벌 계약 관행에 비춰볼 때 불공정한 조건이라는 점을 알리고 수차례 계약 조건을 수정하도록 한 사례가 있다고 이준행 위원은 전했다.

그가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라이트펀드는 코로나19와 같은 신종·풍토성 감염병의 감염·진행·확산을 방지·완화하기 위해 관련 연구·개발(R&D)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출범한 글로벌 민관협력연구기금이다. 보건복지부,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LG화학, SK바이오사이언스, GC녹십자, 종근당, 제넥신 등이 공동 출자했다. 라이트펀드는 매년 공모를 통해 저개발국에서 주요하게 발생하는 신종·풍토성 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과제를 중대형과 소형으로 나눠 선정하고 지원한다.
이준행 위원은 "라이트펀드는 글로벌 산업 현장에서 다양한 파트너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데 필요한 기능들을 익히는 장을 제공한다"며 "선정 과정에서부터 연구 제안서를 영문으로만 받고, 심사 마지막 단계인 선정위원회와의 인터뷰와 프레젠테이션도 영어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감염병 대응 기술의 실질적인 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WHO, 게이츠재단, 글로벌펀드 등과 같은 감염병 연구에 대규모로 재정적 지원을 하는 해외 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준행 위원은 자신을 포함해 8명으로 구성된 라이트펀드의 선정위원 중 6명이 해외 석학으로, 공모 과정에서 유망한 프로젝트를 발견하면 국제 관행에 부합하게 제안서를 다시 작성하도록 도와 지원 대상이 되도록 이끌기도 한다고 전했다.
선정된 과제에 대한 지원 과정에서도 라이트펀드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힘을 발한다. 이미 각 분야의 글로벌 최고 수준의 명성을 얻고 있는 외부 전문가 패널진을 구성해 선정된 연구 과제의 연구진들을 코칭하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전문가 패널진의 코칭은 선정된 과제의 각 연구 단계별로 연구비를 나눠서 지원하는 방식을 긴밀히 이뤄지고 있다. 감염병 연구를 지원하는 WHO, 세계백신연합(GAVI), 감염병대비혁신연합(CEPI), 글로벌펀드 등의 국제기구들도 이 같은 방식을 활용한다고 이준행 위원은 전했다.
연구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이후 상업화 과정에서도 라이트펀드는 과제 수행 기업에 힘이 돼 준다. 이미 라이트펀드의 운영주체들이 글로벌 시장의 규제기관과 학교·연구기관 등과 밀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감염병 대응 시장의 큰 손으로 통하는 게이츠재단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계기로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에 주목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이준행 위원은 평가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회장은 전화통화와 서신 교환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기업의 경영 측면에서도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에 저개발국 감염병 관련 연구는 매력적인 사업이라는 게 이준행 위원의 생각이다. 저개발국에서 자주 유행하는 감염병 치료제의 경우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나 시간은 선진국에서 판매되는 치료제와 비슷하지만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없어 상대적으로 경쟁 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노하우를 축적할 뿐 아니라, 이 같은 사실이 해당 기업의 브랜드 가치까지 높여줄 수 있다고 이준행 위원은 설명했다.
특히 장기적인 감염병 연구를 통한 과학적 역량의 축적도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실제 한평생을 감염병을 연구해온 이준행 위원 역시 감염병 연구를 하면서 쌓은 면역학 역량을 활용해 바이오벤처 박셀바이오를 창업했고, 이 회사는 오는 22일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장기적인 과학적 역량의 축적은 기업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세계적 리더가 되려면 기업 뿐 아니라 국가도 장기적인 투자를 하고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장기적 안목으로 지금보다 더 규모 있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한국산 의료 제품에 대한 위상이 높아졌고, 국제사회는 국제보건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준행 위원의 말이다.
[한경우 기자 case10@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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