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이 주도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CVIP·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Peace)'의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7일 이 장관은 '2020 한반도국제평화포럼(KGFP)' 개회사에서 "분단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졌지만, 평화는 노력 없이 오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남북이 주도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CVIP)'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라며 "이 새로운 시작에 화답하는 북측의 목소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인영 장관이 언급한 CVIP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Dismantlement) 대신 평화(Peace)를 넣은 것으로, 통일부 측은 이에 대해 "평화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쓰이지 않는 다소 생소한 용어로, 지난 2018년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이 한 포럼에서 'CVID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평화에 이르러야 한다'는 의미로 CVIP를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이 장관이 북한 비핵화의 중요성을 간과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통일부는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견고하고 되돌릴 수 없는 평화상태로 구축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라며 평화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이 주도해' CVIP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한 것은 미북 관계와는 별개로 남북관계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이 장관의 취임 이후 일관된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장관은 "지난 70년의 남북관계가 말해주듯 변화를 기다리고, 상황에 내맡기는듯한 태도로는 결코 남북의 미래를 열 수 없다"며 "우리는 열린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얼음을 깨며 항로를 열어 가는 쇄빙선과 같은 태도와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대북협력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는 보건의료, 공동방역 등을 언급하며 "남북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면, 회복된 신뢰를 토대로 더 큰 대화와 협상의 장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과 북미 비핵화 대화의 큰 흐름도 앞당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 장관은 "이 새로운 시작에 화답하는 북측의 목소리를 기대한다"며 우리 정부의 간접적인 남북 교류협력 제안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북한의 호응을 요구했다.
한반도국제평화포럼은 통일부가 매년 주최하는 다자 국제회의다. 올해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이날부터 9일까지 원격 토론방식으로 진행된다. 총 3일간 국내외 석학 190여명의 연사가 참여해 △한반도 평화 △인도주의와 북한의 변화 △한반도 미래를 주제로 다양한 토론이 진행된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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