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고위층의 민원과 외압 사이
입력 2020-09-07 09:32  | 수정 2020-09-14 09:37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 모씨의 군복무 시절 이른바 '특혜 휴가'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새로운 사실들이 날마다 조금씩 드러나면서 여당 내부에서 추 장관을 엄호하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사태에 기름을 부어 비리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검찰개혁을 막아 서려는 정치공세라는 힐난에 대해 야당에서는 검찰이 개혁을 막으려고 2년 전에 추 장관의 아들을 탈영시킨 것이라고 비꼬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추 장관이 직을 내려 놓는 게 현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란 주장까지 고개를 들었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추 장관 아들에 대해) 황제 복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데 2018년 기준으로 평균 휴가 일수가 59일 정도지만 추 장관 아들은 57일 정도 밖에 휴가를 안나갔고 여기에 병가가 포함돼 있다"면서 "평균보다 휴가를 훨씬 덜 나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민주당 당대표였던 추 장관의 보좌관이 부대로 전화를 해 휴가문제를 논의했다는 의혹에 대해 "확인해 봤는데 사실인 것 같다"며 "추 장관이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추 대표 보좌관이 휴가 연장 여부에 대해 부대로 전화했다는 것에 대해선 "그 부분은 부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다만 전화를 받은 지원장교 말은 단순하게 병가를 쓸 수 있는지, 병가를 연장해서 쓸 수 있는지 물어봤다는 민원성 문의 전화였다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외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부적절했지만 외압은 아니라는 김 의원의 설명은 일반 국민들이 납득하기는 어려운 주장이어서 추 장관에 대한 옹호는 커녕 저격을 한 셈이 되어 버렸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도 "터무니 없는 정치공세가 계속되는 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을 괴롭히는 것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군대에 (자녀를) 보낸 모든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이라면서 "이제 좀 중단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유력 정치인의 자제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수술을 해서 걷기 어려우면 휴가를 내거나 병가를 낼 수 있는 건 우리 군의 규정에 그렇게 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의 발언 역시 추 장관 아들 건 자체가 자식을 군에 보내고 노심초사하는 어머니들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 처지다.
실제로 우리 군은 과거에 비해 병사들의 내무생활 방식이나 행정체계가 크게 개선됐다. 그래도 인사기록부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층 자녀나 대기업 오너 2~3세들에 대한 인적사항이 표시되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비공식적으로 연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부모가 직접 연락하지 않더라도 관계자들이 이런 저런 연줄을 타고 좋은 보직을 받아 근무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식의 민원은 흔한 관행이었다는 증언도 적잖다. 추 장관 아들의 경우는 정도로 볼 때엔 휴가를 연장하는 것이니 서류만 잘 만들어서 전달했다면 큰 문제로 비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사안이었을 게다. 애초에 추 장관이 저간의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면 비리 은폐라는 지적까지 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추 장관은 그런 정공법을 택하지 않았다. 특혜 휴가 가능성을 지적하는 야당에 "소설 쓰시네"라며 일축하고 보좌관이 군 관계자와 통화한 적도 없다고 잡아 뗐다가 녹취록이 공개돼 거짓 해명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마당이다.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 서류 미비와 관련해 "행정 실수였다"는 말까지 하게 만들었다. 군이라는 특수조직에서 서류도 없이 휴가를 보내는 행정실수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군 복무를 해본 이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후에 짜맞추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군이 그렇게 허술하게 행정 처리를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해명으로 보면 행정 착오로 이처럼 큰 국가적 분란을 일으킨 군인들은 처벌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들은 계급에 눌려 어쩔 수 없이 '특혜 휴가' 처리에 가담했을 터다. 추 장관이나 국방장관이나 모두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애꿎은 군인들만 잡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다.

우리나라 군대는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여서 군과 관련된 사안은 그리 간단히 넘길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 싫어도 가야 하는 군대이기 때문에 군에서 당하는 차별은 일반 사회에서 보다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추 장관 아들의 휴가 후 군 미복귀 사건은 단순한 '엄마 찬스' 정도 이상의 강도로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 오죽하면 아들 군 면제 건과 관련한 논란이 일어나면 유력 대통령 후보라도 국민적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장관 물망에 올랐다가도 낙마를 하겠는가. 포병부대 탄약수로 아들을 군에 보낸 필자의 지인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포탄 운반하다 어깨 다치고도 치료는 커녕 병가도 못받아 휴가 때 개인병원에서 치료했는데 누구는 엄마 찬스라니…ㅠㅠ." 추 장관 아들 경우가 일반적인 게 아니고 A씨 아들 사례가 더 일반적인 게 현실이란 걸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아마도 추 장관만이 아니고 자식을 군에 보낸 우리 사회 고위층 일부는 이런 식의 민원을 한 경험이 적잖이 있을 지 모른다. 아예 군 면제를 받게 하는 부모보다는 나을 수도 있지만 군에 보내고 특혜를 받도록 한 사람이 괜찮다고 면죄부를 줘야 하는 것 역시 아니다. 고위 공직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설훈 민주당 의원이 "아파서 안가도 되는 군대인데 엄마 때문에 갔다. 오히려 칭찬해줘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자식을 군에 보내는 보통의 부모들을 두 번 죽이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입영하지 않아도 될 환자라면 군에 가고 싶어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그런 원칙을 어기고 군에 보냈다면 그것이야말로 군 입영비리가 된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실제로 필자는 입영할 수 없는 형편인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단기사병으로 모집됐다가 신체검사 과정에서 되돌려 보내지거나, 꼭 현역으로 입영하겠다는 청년이 신체검사 등급 미달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추 장관 아들 '특혜 휴가' 논란은 추 장관 입장에서는 억울한 게 있을 지라도 현재와 같은 수사 방식과 속도로 처리해선 가라앉히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수사를 맡은 검찰이 속도를 빨리 해 결과를 내든지, 아니면 야당이 제기하듯이 중립적인 특별검사를 임명해 처리하게 해야 현정부의 부담을 줄이고 일각에서 우려하듯 '제2 조국사태'로 비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여권에서 "보좌관이 전화를 걸었지만 추 장관은 몰랐다"는 식으로 싸고 도는 모습만 보이며 사태를 질질 끌고 가다가는 정권 전체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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