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핫이슈] `국민의 힘` 논란을 보는 다른 시각
입력 2020-09-01 12:01  | 수정 2020-09-08 12:07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 이름을 '국민의 힘'으로 바꾸기로 한 게 전해진 뒤 공식 출범하기도 전부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용'이라고 문제제기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통합당 내부에서도 과거 시민단체의 이름과 같다는 지적이 나와 1일 상임전국위원회와 2일 전국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되는 과정에서 갑론을박이 이뤄질 전망이어서 어떻게 귀결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통합당의 새 당명이 '국민의 힘'으로 바뀔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가 차다. 불쾌하다"면서 "새 당명 도용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 의원은 "국민의 힘이 벌써부터 조롱당하고 있다"며 "시민단체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 힘에 의해 탄핵당한 세력들이 '국민의 힘'을 당명으로 사용하는 코미디가 어디 있나"라고 꼬집기도 했다.
통합당 측은 '국민의 힘' 개명과 관련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라는 3가지 의미를 담았다며 △특정세력이 아닌 국민의 힘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당 △모든 국민과 함께하는 정당 △국민의 힘으로 결집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정당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의 이름 도용 주장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사고와 생각을 하는 분이어서 귀담아 들을 말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정 의원 얘기대로 '국민의 힘'은 지난 2003년 4월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이란 긴 이름으로 창립한 시민단체였다.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정치개혁, 언론개혁, 국민통합'이라는 3가지를 목표로 내걸고 정치인팬클럽 구성과 지지운동, 선거법 등 제도개선 운동, 수구언론 비판과 언론환경개선 운동, 커뮤니티 활동이 사업으로 추진됐다. 정당은 아니지만 정당과 비슷하게 지역구별 조직을 만들고 2004년 총선에서 낙천/낙선/당선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총선를 넘기면서 조직 활동이 줄어들고 구심점이 흩어져 국민의 힘이란 시민단체는 사실상 해체된 상태다. 정당 이름으로 등록된 적도 없기 때문에 통합당이 새 당명으로 쓰려고 한다고 해서 '당명 도용'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적잖다. 다만 시민단체 국민의 힘 초대 공동대표를 지냈던 정 의원 입장에서는 그가 페북에 언급한 것처럼 '국민의 짐, 국민의 적, 적폐의 힘, 국민의 휨, 수구의 힘' 등으로 조롱 당한다면서 불만을 표시할만하다. 다만 자신이 아끼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단체의 이름이 더럽혀진다고 해석하는 건 너무 나갔다. 통합당 당명 개정에 비판을 가하는 누리꾼들이 '국민의 힘'이란 시민단체를 기억이나 할 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 의원이 불만을 제기하듯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을 조롱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조롱 당하는 게 통합당이라면 대신 걱정해줄 이유도 없다. 오히려 걱정을 해야 할 쪽은 통합당 쪽일 게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달 광복절 기념식에서 '친일 청산'을 강조한 경축사를 내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사이에 격렬한 공방을 불러일으켰던 김원웅 광복회장에 대해 시민단체 '국민의 힘'이 낙천/낙선운동 대상으로 선정해 질타를 가한 바 있다는 점이다. 김 회장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2003년에 시민단체 '국민의 힘'은 출범 직후부터 김 회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잦은 당적 이동(민정당-꼬마민주당-한나라당-개혁국민정당 등 전전), 투기 의혹, 당론 추종하며 의사결정 번복 등에 대해 질의서를 보내 입장을 밝히라고 몰아붙였다. 당시 정청래 의원은 시민단체 '국민의 힘' 초대 공동대표였다.
그런데 광복절 경축사 논란이 불거진 뒤로 상황은 반대로 흐르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통합당이 김 회장의 광복절 경축사와 관련해 "나라를 둘로 갈라치고 있다"고 비판한 데 대해 정청래 의원은 "김원웅 회장에게 돌팔매하는 자들이여 차라리 백범 김구 선생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강하게 옹호하고 나섰다. 김 회장은 여러 차례 당적을 이동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 공개적인 해명이 뚜렷하게 없었던 만큼 일각에서는 정 의원의 김 회장 옹호나 이번 통합당 당명 개정 비판이 진정성 있는 것이라기 보다 정치적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국민의 힘'이 법적인 하자가 없이 통합당의 새로운 간판으로 확정된다면 그 잘잘못은 당명대로 국민의 힘에 의해 가려질 것이다. 정 의원이 감싸 준 김 회장이 과거 시민단체 '국민의 힘'에 의해 철새 정치인으로 비판받다가 친일 청산의 선봉장으로 변신에 성공한 것처럼 통합당도 정 의원 표현대로 국민의 힘으로 탄핵당했던 정당에서 국민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수권 정당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말이다.
통합당이 새 당명을 '국민의 힘'으로 최종 확정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계획대로 돼 국민의 힘을 등에 엎고 일어서려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 바꾸기나 정치적 이미지 세탁이 아니고 당의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될 것이다. 통합당이 '국민의 힘'으로 간판을 바꿔 달더라도 정쟁보다는 민생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자세로 당풍을 쇄신하지 않거나, 청년층과 중도층을 끌어안을 미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힘' 지지를 받을 순 없을 테니 결국 정 의원 말대로 이름만 베꼈다는 오명을 쓰고 주저앉는 운명을 맞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과거의 잘못을 털겠다면서 광주에서 5.18 정신을 상기하며 무릎을 꿇고, 중도층 포용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주목해볼 대목이다.
정 의원이나 민주당은 지금 남의 집 일을 걱정을 하면서 기분 나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의 힘' 이름을 도용했다면서 통합당에 딴지를 걸 시간에 코로나19 창궐로 가중된 경제난과 국민적 갈등을 어떻게 넘어설지 고민하며 통합당보다 먼저 '국민의 힘'을 끌어올 방안을 제시하는데 집중하는 게 낫다. 이번 통합당의 당명 개정 과정이 여당과 야당이 '국민의 힘'을 받기 위해 위기극복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각축을 벌이는 계기로 작동한다면 이름 도용 논란도 나쁘지만은 않을 듯하다.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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