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해외에 나가기도 어렵지만 해외에 가지 않아도 세계 각국의 특색있는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세상이다. 대형 할인마트는 물론 근처 편의점만 가더라도 온갖 맥주가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고르는 기쁨 못지않게 골라야 하는 고민이 생길 수준이다.
라벨은 물론 맛도 각양각색인 맥주이지만 맛을 결정하는 원천은 같다.
문명의 기원이 5원소(물, 불, 흙, 나무, 철)에 의지하는 것처럼 맥주 맛도 4원조(물, 홉, 맥아, 효모)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해 보이지만 홉 종류만 해도 200여종, 효모도 수백종에 달한다. 재료 조합에 따라 무한한 맥주 세계가 열린다.
맥주 맛을 결정짓는 1원소는 '물'이다. "물이 좋은 곳이 맥주 명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물에 들어있는 미네랄은 맥주 풍미를 좌우한다. 미네랄 함량은 다시 2원소인 '홉'의 맛과 향에도 영향을 준다.
물맛이 맥주맛을 좌우하는 만큼 맥주에 사용되는 물의 원산지 자체를 브랜드로 만들기도 한다.
칭따오가 대표적이다. 칭따오 맥주는 중국 내에서도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한 청도 라오샨 지역의 광천수를 사용한다. 1903년 당시 독일인이 칭따오 공장 부지로 청도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홉은 맥주 풍미를 결정하는 솔방울 모양의 덩굴식물이다. 맥주의 기본 베이스인 쓴맛을 낼 때 사용한다. 종류에 따라 시트러스향, 과일향 등의 다양한 아로마를 발산한다. 맥주에 사용하는 홉은 200여종이다. 품종과 비율 함유량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맥주 명칭에 보리 맥(麥)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리가 없으면 맥주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재료가 추가됐지만 보리는 언제나 맥주와 함께했다.
[사진 제공=비어케이]
맥주에는 그냥 보리가 아니라 싹튼 보리인 '맥아(몰트)'를 사용한다. 맥주 광고마다 보리가 아닌 '맥아'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3원소인 맥아를 끓이고 굽고 볶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정도 따라 맥주 색과 향이 다채로워지기 때문에 요즘에는 보리 외에도 밀 등으로 만든 다양한 종류의 맥아를 사용한다.
마지막 4원소는 '효모(酵母)'다. 효모는 발효의 어머니라는 의미다. 효모는 맥주 제조 최종 단계에서 투입된다.
맥주뿐 아니라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효모는 발효의 주체이자 맥주 스타일을 결정하는 원료다.
효모는 맥아가 지닌 전분을 당으로 분해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발효탱크에서 옮겨진 맥아즙에 효모를 투입하면 효모가 맥아즙과 반응을 일으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이때 발효온도와 발효지점에 따라 맥주통 상면발효한 에일 맥주(16~21도)와 하면발효한 라거 맥주(4~10도)로 구분된다.
상면발효는 맥주통 위쪽에서 발효하는 방법이고, 하면발효는 발효가 끝나면서 가라앉은 효모를 이용해 발효하는 방법이다.
효모는 대를 이어 사용된다. 칭따오는 중국 청도에 양조장이 처음 지어질 당시 사용한 '1903 효모'를 아직도 쓴다. 칭따오 맛을 좌우하는 병기(兵器)로 특별 관리하면서 '맥주생물발효공정실험실'을 별도 운영한다.
요즘엔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춰 맥주를 만드는 재료도 다양해지고 있다. 옥수수, 호밀, 쌀, 등 다른 곡물이나 커피, 과일, 초콜릿 등 다양한 재료를 첨가한 맥주도 나온다.
[사진 제공=비어케이]
하지만 기본 재료만 사용해 클래식한 매력을 이어가는 맥주도 있다.독일에서는 맥주를 만들 때 물, 홉, 맥아 효모 이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 맥주 제조를 명령한 법령인 '맥주 순수령'이 존재한다.
맥주 제조법과 비율에 대해 명시한 것으로 1516년 바이에른공국 빌헬름 4세 때 공포됐다. 당시에는 맥아, 물, 홉 3가지 재료만을 넣어 맥주를 생산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1903년부터는 '효모'를 포함해 총 4가지 맥주의 원료까지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맥주 순수령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맥주 순수령을 고수하는 맥주는 에딩거 '헤페바이스 비어'다. 다른 첨가물 없이 물, 홉, 맥아, 효모만을 사용해 만든 밀맥주다.
이름 앞에 붙은 헤페(Hefe)는 효모를 거르지 않고 그대로 담았다는 의미다. 효모로 인해 만들어진 특유의 뿌연 색감이 특징이다.
[최기성 기자 gistar@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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